더 치열한 ‘아스팔트농사’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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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치열한 ‘아스팔트농사’ 짓자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6.09.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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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지난 25일 끝내 숨졌다. 국가의 공권력에 쓰러진 지 317일 만이다. 지난해 겨울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80㎏)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다가 경찰이 쏜 살수차 직사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이 세상을 떠났다. ‘무사귀환’을 기다렸던 전남 보성농민회 농성장이 분향소로 바뀌었다. 전국 곳곳에 ‘국가폭력 진상규명’ ‘나락값 보장’ ‘박근혜 퇴진’ ‘반드시 이뤄내겠다’라는 각오를 새긴 펼침막과 함께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가 속속 설치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순창읍 교육청사거리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진상규명과 정권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아시아 민주주의 모범국가’에서 ‘국제사회의 인권감시 대상국가’로 전락한 박근혜 정부의 인권 실상의 반증이다. 물대포로 평화적 집회에 참가한 시민의 두개골을 함몰시키는 국가가 책임자 처벌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다. 아니 국회에 출석한 경찰청장은 ‘사과할 일이 아니다’는 망언까지 쏟아냈다. 시위대의 불법 행동에 대한 정당한 직무집행이었다며. 하지만 직사 살수요령을 훈련 받은 적 없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을 방치하고, 어떤 구호조치도 하지 않은 공권력에게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시민’은 없고 ‘적’으로 간주되는 ‘시위대’만 있었다.
 
그날 무참하게 쓰러진 농민이 하얀 병실에 갇혀 있던 지난 10개월 동안 뒷짐만 지고 있던 검찰은 그의 사망원인을 가리겠다며 부검을 운운하자 많은 시민들은 시신 탈취를 경계한다. 1991년 영안실을 벽을 부수고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한 경찰의 무도한 전과와 2005년 역시 경찰폭력으로 희생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사인이 폭력이 아니라 지병 탓’이라고 주장했던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인식이 ‘고인의 죽음은 과격하고 불법한 시위가 원인이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자’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시민들은 더욱 분노한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묻는다. 얼마만큼의 과격하고 불법한 시위가 죽음을 ‘정당화’하는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쌀 협상반대시위’를 하다 경찰에 맞아 숨진 두 농민 관련 사과 담화문에서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 국민들에게 미칠 피해가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합니다”라고 했다. 10년전 대통령과 10년후 정부여당의 인식차가 하늘 땅이다.
 
10년전 경찰의 방패는 10년후 경찰의 물대포다. 10년 전에는 사과라도 받았는데 10년 후에는 사과는커녕 진상규명조차 방해한다. 역사의 반복이 이처럼 무도하게 악화되는 나라. 이웃의 고통을 ‘시체팔이’라고 조롱하는 자들이 사는 나라. 현직 부장판사ㆍ부장검사가 비리로 구속되는 나라. 거짓말로 범벅된 이력이 밝혀져도 장관이 되는 나라. 한나절에 수백원 재단법인을 세우는 나라. 이들의 권력과 금력이 자행한 부조리가 범죄로 처벌받지 않는 나라. 권력이 뒤에서 벌인 일을 시민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나라. 대한민국 … 헬조선.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농민의 분향소에서 농민들은 생각한다. “그는 그냥 농민이 아니다.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헌신과 열망, 독재와 독점으로 치닫는 반민주 반노동자 반통일 정권에 대한 도전과 저항을 멈추지 않은 의인이다. 칠순 노구에 15만 민중총궐기 대열 선두에서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려 한 의사다. 그는 척박한 분단의 땅, 불평등의 대지에서 희망을 일구려고 온몸으로 저항해온 열사다. ‘보성농민회’ 조끼 하나 자랑스럽게 걸치고 선봉에 서서 머뭇거리지 않던 농민지사였다. 그는 ‘농민’이라는 칭호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어른이었다.”
 
농민들은 다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선 농민의 강제부검을 막는 일이다. 이어 지금보다 더 엄혹했던 80년대에 그가 그랬듯이 ‘박정희 유신잔당 장례식’을 치르러 거리로 나가는 일이다. 차벽ㆍ최루액ㆍ물대포가 없는 세상, 소수의 독점과 착취가 없는 세상, 분단의 철조망이 걷히는 세상을 향해 그가 쓰러졌던 진보의 도로 한복판에 우뚝 서는 일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공권력에 희생되는 양민이 생기는 않도록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힘을 모아 박정희, 전두환 때보다 더 치열한 ‘아스팔트농사’를 짓겠다고 투박한 손 불끈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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