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7) 동계 구미마을과 이 씨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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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7) 동계 구미마을과 이 씨 할머니
  • 박재순 해설사
  • 승인 2016.11.3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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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동계면 구미마을 남원양씨 옛 종가 모습. <구미마을 다음카페 사진>

어려움 딛고 남원양씨 문중 ‘꽃’ 피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면으로라도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8년째 순창의 행복한 맛과 멋을 오신 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있는 순창군 문화관광해설사 박재순 입니다. 오늘은 순창에서도 여인의 힘으로 한 문중을 일으켜 세운 장수마을이자 640여년 남원양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계면 구미마을로 여행을 떠납니다.
올해 10월 추수철에는 유난히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이 때 내린 비와 된서리가 지나니 11월 중순 설악산 단풍보다 강천산 단풍이 더 붉은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이제는 시린 손 호호 불며 따끈한 군고구마 구워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먹고 싶어지는 겨울입니다.
순창에서 승용차로 20분 쯤 달려가면 거북이 꼬리가 향하는 마을이라는 뜻의 ‘구미’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마음의 휴식처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이 씨 할머니이십니다.

 

▲이 씨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조가 내려준 정려각.

 

이씨 할머니 정려각
구미 마을 어귀에는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습니다. 그 느티나무 앞에 정려각(旌閭閣) 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 씨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조가 내려준 것입니다. 어떤 분이기에 왕이 정려비를 내려주었을까요?
때는 고려 말. 이 씨 할머니의 시아버지는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고 궁궐의 모든 문서의 출납을 맡는 대제학을 지낸 양이시였습니다.
그런데 최영 장군의 부하가 잘못을 저지르자 옥에 가두었습니다. 최영 장군이 풀어주라고 하였으나 양이시는 거부하였고 최영장군의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아들도 직제학 벼슬에 있었는데 같이 죽임을 당합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연이어 잃은 이 씨 할머니는 유복자를 임신하고 있었지요. 친정에서는 개가를 종용합니다. 이 시대에는 사대부 집안도 재혼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씨 할머니는 아들을 낳고 나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며 어린 아들 양사보를 안고 개성에서 시댁의 본향인 남원 교룡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이때가 1379년입니다. 최무선이 화약을 제조하여 진포에서 왜선 500척을 격파하자 그 잔당들이 금강하구에서 내륙으로 도주하여 남원 운봉산성으로 숨어들어 옵니다. 우왕은 이성계를 보내 이들을 토벌하라고 명을 내리지요. 남원에 와서 보니 시댁 식구들은 난을 피해 흩어지고 없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살길이 막막해진 이 씨 할머니는 비홍재에서 기러기 세 마리를 깎아 날립니다. 한 마리는 순창군 동계면 구미마을에 내려앉았고, 다른 한 마리는 동계면 관전 마을에 마지막 한 마리는 적성면 용수막 마을에 내려앉습니다. 구미를 자신의 양택으로 용수막은 자신의 음택으로 관전은 아들의 양택으로 정하게 됩니다. 할머니가 나무 기러기를 날려 보낸 남원에서 순창 넘어오는 고개 이름이 그래서 ‘비홍재’(飛鴻岾)가 되었답니다.
이씨 할머니가 개성에서 내려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있었습니다. 족보의 일종인 가승과 시아버지와 남편의 과거합격증인 홍패 2점입니다. 고려시대 과거 합격증인 홍패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이 총 6점이 있는데 그 중 2점이 이 씨 할머니 손에 의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국가에서 보물 725호로 지정하였습니다. 나하나 목숨 챙기기도 바빴을 텐데 집안의 가보를 챙겨 들고 다닐 수 있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그래서 세조 13년(1467) 세조가 이씨 할머니의 행적을 기려 정려비를 내려주었답니다.

남원 양씨 종택
이 씨 할머니가 처음 구미 마을에 들어 왔을 때 날이 저물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 하룻밤 지낼 것을 청합니다. 이 때 방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본인도 집주인이 아니며 ‘양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어서 재워드릴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 씨 할머니가 “여기 내 아들이 양 씨 성을 가지고 있소”라고 얘기하자 할아버지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구미마을에 안착하고 나서 아들 양사보는 마을 뒷산으로 사냥을 즐겨 다니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였답니다. 이 씨 할머니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요. 선대의 가풍이 아들 대에서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식음을 전패하고 눕게 됩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가 몸져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편찮냐고 묻습니다. 이에 이 씨 할머니는 “네가 허구한 날 사냥만 하러다니고 공부에는 마음이 없으니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 차라리 죽으려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 날로 양사보는 사냥 도구들을 모두 없애고 공부에 전념을 하여 나중에 함평현감을 지내게 됩니다.
남원양씨 종택에는 ‘양호재(養浩齋)’와 ‘쌍매당(雙梅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양호재’는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양홍의 호이고, ‘쌍매당’은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한 양사민의 호입니다.
조선시대 이 마을에서 과거에 합격한 분이 몇 분이나 될까요? 문과 급제자가 8분, 진사시험은 30여 분이 합격하였답니다. 그런데 종가집에서만 17분이 과거나 생원ㆍ진사시험에 합격하였답니다. 혹시 주변에 고3 수험생이나 중요한 승진 시험을 앞두고 있는 분 있습니까? 이 마을로 오십시오. 이곳에 머물면서 마을의 기운을 듬뿍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고 36대 종손인 양대우 씨가 말씀해주었습니다. 이 곳 양호재에 머물면서 과거 합격 유무를 점쳤던 마을 앞산의 칠성바위도 찾아보기 바랍니다.

 

▲구미마을의 중요 문서를 보관한 귀문각.

 

귀문각(龜文閣)
거북 귀자는 의미로 이야기할 때는 ‘귀’로 읽고 지명으로 말할 때는 ‘구’자로 말한다고 합니다. 귀문각은 구미마을의 문서를 보관한 곳입니다. 바로 여기에 고려시대 과거 합격증인 홍패 2점과 조선시대 과거 합격증 4점, 임명장 1점 등 총 7점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홍패는 한지에 치자로 반복해서 물을 들여 염색을 한 것으로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이 보물들을 도난당할 뻔 했습니다. 3중의 보안 장치를 해 놓았는데 도둑이 들어와서 2중 장치까지는 뚫었는데 마지막 벽돌을 깨지 못하고 날이 새면서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2006년 9월에 전주국립박물관으로 보내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관 된 것은 영인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남원 양씨 종중문서 중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 지방유형문화재 98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씨 할머니께서 비홍재에서 날린 기러기가 내려앉은 바위가 있는 뒤 안으로 가면 대나무 숲이 나옵니다. ‘대나무’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뭘까요? 대나무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에 함께 하였죠. 죽순을 채취해서 먹기도 했고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기도 했지요. 또한 선비들은 대나무의 꺾이지 않는 성질을

▲녹갈암

보면서 지조를 떠올리기도 하였답니다. ‘녹갈암(鹿渴巖)’은 목마른 사슴 바위란 뜻인데요. 우물이 주변에 있어야 되겠지요? 종택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640여 년 된 우물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물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이 우물에서 쌀도 씻어 밥도 지으시고 빨래도 합니다. 1960년대 구미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양 씨 성을 가지고 있어서 씨족학교로 신문에 보도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씨 할머니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 구미 마을 여행 어떠셨나요?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꺼져가는 남원양씨 문중을 일으켜 세우고 오늘날 명문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들이 내년 봄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네요.
하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싹을 피워내며 살아납니다. 여러분도 힘들 때가 있지요?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한 단계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답니다. 포기보다는 이 씨 할머니처럼 정면으로 맞서 이겨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구미마을을 방문해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중한 오늘, 나와 함께하는 이들과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순창군지(순창군-2015), 아름다운 순창의 문화재(문화원-2005), 구전설화 총람(문화원-2012), 남원양씨 36대손 양대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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