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8) ‘구암사’로 떠나는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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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8) ‘구암사’로 떠나는 여행 1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6.1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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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석전 박한영과 월인석보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에 소재한 구암사. 백제 무왕 37년(서기 636년) 숭제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한다.

반갑습니다. 저는 순창의 황홀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순창군 문화관광 해설사 황홀한 사람 황호숙입니다. 소개만 들어도 신나는  보물여행이 될 것 같지 않나요. 쉿! 아주 깊숙한 곳에 있지만 정성스레 보존하고 가치를 널리 알려야 될 곳, 구암사로 떠나보겠습니다. 아마 ‘순창에 이런 위대하고 멋진 꿈을 간직했던 곳이 있었어’라고 감탄하실꺼예요. 구암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세 번에 걸쳐서 연재해야 할 것 같아요.
웬 뜬금없이 구암사 여행 이냐구요? 2016년이 가기 전에 "월인석보 권15에 담긴 세종대왕의 한글사랑과 꿈"이란 주제로 올 한해 진행되었던 순창군민들의 답사와 강의를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 싶어서예요.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확정되어 문화재청과 순창군이 주최하고 순창문화원이 주관했던 프로그램이죠.
‘여암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바로 알기', '월인석보를 품은 구암사 답사기행', '훈민정음 창제를 통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등이 진행 되었답니다. 

 

 

자! 떠나볼까요?
“구암사가 얼마나 높은 곳인가 하면 정읍역에서 보면 내장(內藏)이 까맣고 내장에서 보면 순창 넘어가는 재가 또 까만데 이 잿마루가 순창 쪽으로는 거의 평지와 비둥등하니 순창은 실로 산꼭대기 고을이어늘 구암은 순창서도 또 까맣다.”
위당 정인보 선생이 동아일보 연재(1934.7.31~9.20)의 기행문에서 언급한 구암사 가는 길이예요. 순창에서 내장사 쪽으로 가다보면 복흥면사무소가 나오죠. 추령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산중이라는 식당이 보이고 왼쪽으로 큰 길이 나옵니다.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산중으로 올라가는 길이 꼬불꼬불 펼쳐지지요. 함박눈 펄펄 내리는 날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도란도란 올라가 보고 싶은 길이긴 한데 몸이 안 따라줄 것 같네요, 마침 1920년대 이곳에 왔던 육당 최남선은 <심춘순례(尋春巡禮)>(백운사, 1926)에서 구암사가 자리한 깊숙한 경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요. 그때가 4월 2일, 구암사에 왔더니 눈이 펑펑 온다고 써졌네요.
-'순창의 복흥은 남원의 운봉과 한가지로 전라도에서 가장 높은 지방이다. 사방 어디서든지 10리씩 오르게 생긴 곳이다. 구암사에서 보면 마치 구암사가 혹시 외간(外間)과 교통할까 보아서 동구를 바짝 막아선 것 같은 화개봉(華盖峯 . 656.8m)도 나와 보면 실상 들과 물과 재를 건너 이쪽에 있는 것이었다.'고 했어요.
이 절은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백제 무왕 37년(636년)에 숭제(崇濟)법사가 창건하였고, 1392년(태조1년)에 각운(覺雲)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중창하고 구암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져요.
특히 ‘구암사’라 함은 사찰 동편 지점에 숫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고, 대웅전 밑에는 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암사라 하였으며, 신령스러운 거북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구암사가 있던 산을 영구산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지지요.
담벼락에 기대서서 산의 모습을 한번 볼까요? 태조 때 무학대사가 이 절에 와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사찰이라고 하고 가셨다는데 저 앞에 보이는 게 문필봉이고, 요사채 옆쪽으로 보면 또 문필봉이 있어요. 이름난 선지식들이 많이 배출된 이유라고도 하네요.
구암사는 건물이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거나 석불이 있어서 유명한 게 아닙니다. 이곳은 <월인석보권 15> 라는 보물도 있지만 조선시대 불교계의 서울대학이라 할 만큼 선 논쟁을 주도한 위대한 스님들이 주석하던 곳입니다. 또한 20세기 한국문단에서 내노라 했던 문인들이 석전 스님께 배우고 익히고자 왔던 곳입니다.
영조때 화엄종주 설파 상언스님을 시작으로 불교문화의 꽃을 구암사에서 피우며 화엄종맥의 법손이 계승 되었답니다. 강학을 열면 1000여명의 스님들이 모였다고 하네요. 학승들에게 불법을 가르치던 불교아카데미 였던거죠.
1800년대 초에는 백파긍선(白波亘禪,1762~1852)과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사이에 오고간 서간 논쟁과 교유는 유명했지요. 선문의 요지에 대해 거침없는 상호토론을 통해 치열한 교리 논쟁을 유발시키면서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알다시피 추사 김정희는 하늘 아래 자기가 제일이다 라는 안하무인격 자뻑의 대가였어요. 백파의 <산문수경>에 대해 추사가 백파 망증 15조 라는 걸 써서 스님에게 보냈지만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꼴”이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죠, 이 논쟁은 100년을 이어져 오며 아주 치열했다고 해요. 논박은 거침이 없었으되 서로를 존중했지요. 오랜 논쟁을 하면서 백파를 흠모하게 된 추사는 자신이 숭봉하던 달마상을 구암사로 보냈을 정도입니다. 백파가 입적하자 쓴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비문에는 “백파는 화엄종주이자 율사이며 대기대용의 격외선사”라고 추앙했지요.

 

가난하여 송곳 꽂을 땅도 없으나
기상은 수미산을 누를 만하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 섬기듯이 하여
가풍이 아주 진실했으니
그 이름 긍선이여,
더 할 말이 없구나

당시에는 구암사가 본사였으나 지금은 선운사가 본사가 되다보니 6ㆍ25 전쟁후 이 비문은 선운사로 옮겨 갔어요.   (2주 뒤 계속)

 

▲월인석보 권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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