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3년뒤 쓰러져…가족 동의로 장기기증
갑작스런 죽음에 병약한 부인 생활고 가중
값진 희생 인정, 도움 절실 행정이 나서야
공기 좋은 순창을 택해 이주해 살다가 뜻하지 않게 쓰러진 한 귀촌인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 선물로 장기기증을 했다. 그의 나눔으로 11명이 새 생명과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세상과 작별하며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고 김형국(향년 60ㆍ풍산 유정)씨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22일 저녁식사를 하다가 턱에 통증을 느끼고 잠시 쉬다가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김씨가 쓰러지자 부인은 119 구급대를 불렀고 보건의료원을 거쳐 조선대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고 이틀 뒤 열린 뇌사판정심의위원회에서 뇌사판정을 했다. 부인 김미자(57) 씨는 “당일 오후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남편이 이렇게 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허망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지난 2013년 12월에 풍산면으로 귀촌했다. 안산의 한 철강회사에 다니던 김 씨는 고된 도시생활에 지치고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겸해 부인과 함께 농촌으로 왔다. 귀촌 초기에는 임대한 집에서 40일밖에 못 살고 나오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지금의 주택을 임대한 뒤로 주거 걱정은 사라졌다. 김 씨는 이곳에서 지내며 파킨슨병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었고 최근에는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그런 김 씨가 뇌사판정을 받은 것은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도 충격이었다. 장기기증은 의사아들을 둔 김 씨의 사촌누나가 조용히 권했다. 경황이 없던 김 씨 부인과 자녀들은 장기기증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설명을 들은 후 고인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뜻을 같이 했다. 조선대병원 장기이식센터는 김 씨에게 뇌사판정을 한 11월 24일 오후 장기적출 수술을 진행하고 당일 밤 순창장례식장에 유해를 운구했다.
평소 김 씨 가족을 살뜰히 챙겼던 황인석 풍산교회 목사는 김 씨의 부고와 장기기증 소식을 듣고 마음이 크게 심란했었다. 황 목사는 “고인이 쓰러지기 전 예배에서 죽음에 관한 설교를 했다. 살아있는 동안 봉사하고 이웃을 섬기며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김 씨가 이 설교를 듣고 주변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남에게 주며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 마침 그 주에 하늘로 간 거다. 김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은 새 생명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쓰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인은 여러 사람에게 축복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부인 김 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이어 닥친 생활고로 다시 한 번 휘청이고 있다. 고인은 생전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달이 빚을 갚고 있는 상태였다. 김 씨가 숨진 뒤 부인은 대신 빚을 갚아야 할 처지가 됐는데 불규칙한 혈압과 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을 앓고 있어 육체적 노동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부인 김 씨는 “공과금을 내려고 만든 통장이 차압돼 돈을 빼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외아들이어서 친척이 없는데다 자녀들도 어렵게 자라 아버지 빚을 갚을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나마 귀농인의 집을 임대해 살고 있어 아직 집 걱정은 안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이웃의 물질적 도움은 한계가 있다. 황 목사는 “백방으로 뛰며 면사무소에 가서 상의도 해봤는데 국가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공공근로대상도 65세 이상만 가능해 그것도 안 된다”며 “어느 독지가나 이웃들이 도와주거나 행정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봐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고지식하고 우직한 성격을 가졌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장기기증이란 값진 선물을 안기고 갔는데 행정에서조차 외면 받는 현실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부인 김 씨는 생활고에 상관없이 훗날 자신도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남편의 길을 따라 장기기증을 할 계획이다.
고 김형국 씨의 장기기증은 사회를 위한 값진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동시에 이 의로운 행위가 인정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순창군이 나서야 할 차례다. 그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