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국 씨 새 생명 안기고 영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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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씨 새 생명 안기고 영결...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7.01.0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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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형국(맨 오른쪽) 씨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무엇을 줄 지를 고민하던 그는 무려 11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다. 이 의로운 행위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와 순창군이 답해야 한다.

귀촌 3년뒤 쓰러져…가족 동의로 장기기증
갑작스런 죽음에 병약한 부인 생활고 가중
값진 희생 인정, 도움 절실 행정이 나서야

공기 좋은 순창을 택해 이주해 살다가 뜻하지 않게 쓰러진 한 귀촌인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 선물로 장기기증을 했다. 그의 나눔으로 11명이 새 생명과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세상과 작별하며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고 김형국(향년 60ㆍ풍산 유정)씨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22일 저녁식사를 하다가 턱에 통증을 느끼고 잠시 쉬다가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김씨가 쓰러지자 부인은 119 구급대를 불렀고 보건의료원을 거쳐 조선대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고 이틀 뒤 열린 뇌사판정심의위원회에서 뇌사판정을 했다. 부인 김미자(57) 씨는 “당일 오후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남편이 이렇게 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허망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지난 2013년 12월에 풍산면으로 귀촌했다. 안산의 한 철강회사에 다니던 김 씨는 고된 도시생활에 지치고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겸해 부인과 함께 농촌으로 왔다. 귀촌 초기에는 임대한 집에서 40일밖에 못 살고 나오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지금의 주택을 임대한 뒤로 주거 걱정은 사라졌다. 김 씨는 이곳에서 지내며 파킨슨병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었고 최근에는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그런 김 씨가 뇌사판정을 받은 것은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도 충격이었다. 장기기증은 의사아들을 둔 김 씨의 사촌누나가 조용히 권했다. 경황이 없던 김 씨 부인과 자녀들은 장기기증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설명을 들은 후 고인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뜻을 같이 했다. 조선대병원 장기이식센터는 김 씨에게 뇌사판정을 한 11월 24일 오후 장기적출 수술을 진행하고 당일 밤 순창장례식장에 유해를 운구했다.

고 김형국 씨.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 씨가 기증한 장기는 심장, 췌장, 각막, 신장 등 무려 11곳이나 됐다. 한 사람으로부터 이같이 많은 장기를 적출하기는 조선대병원에서도 7년 만에 벌어진 큰 일로 알려졌다. 김 씨는 파킨슨병을 제외하면 평소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김 씨가 기증한 장기는 신속히 전국 각지로 이송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전해졌다. 장기기증은 이식받는 사람에게는 새 생명을, 그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선물해준다. 병원은 이후 기증받은 사람들의 신상을 제외한 아주 간단한 정보를 김 씨 가족에게 전해주기로 했으나 부인 김 씨는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의 선행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렸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의미다.
평소 김 씨 가족을 살뜰히 챙겼던 황인석 풍산교회 목사는 김 씨의 부고와 장기기증 소식을 듣고 마음이 크게 심란했었다. 황 목사는 “고인이 쓰러지기 전 예배에서 죽음에 관한 설교를 했다. 살아있는 동안 봉사하고 이웃을 섬기며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김 씨가 이 설교를 듣고 주변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남에게 주며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 마침 그 주에 하늘로 간 거다. 김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은 새 생명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쓰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김형국 씨가 텃밭을 일구는 모습.
고인은 여러 사람에게 축복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부인 김 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이어 닥친 생활고로 다시 한 번 휘청이고 있다. 고인은 생전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달이 빚을 갚고 있는 상태였다. 김 씨가 숨진 뒤 부인은 대신 빚을 갚아야 할 처지가 됐는데 불규칙한 혈압과 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을 앓고 있어 육체적 노동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부인 김 씨는 “공과금을 내려고 만든 통장이 차압돼 돈을 빼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외아들이어서 친척이 없는데다 자녀들도 어렵게 자라 아버지 빚을 갚을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나마 귀농인의 집을 임대해 살고 있어 아직 집 걱정은 안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이웃의 물질적 도움은 한계가 있다. 황 목사는 “백방으로 뛰며 면사무소에 가서 상의도 해봤는데 국가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공공근로대상도 65세 이상만 가능해 그것도 안 된다”며 “어느 독지가나 이웃들이 도와주거나 행정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봐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고지식하고 우직한 성격을 가졌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장기기증이란 값진 선물을 안기고 갔는데 행정에서조차 외면 받는 현실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부인 김 씨는 생활고에 상관없이 훗날 자신도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남편의 길을 따라 장기기증을 할 계획이다.
고 김형국 씨의 장기기증은 사회를 위한 값진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동시에 이 의로운 행위가 인정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순창군이 나서야 할 차례다. 그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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