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을 여니 풍경이 얼어있다. 절기 경칩(驚蟄)이 눈앞인데 조금 차갑다는 추위의 정도가 체감의 강도를 더욱 높인다. 이제 봄이라는 인식이 마음속에 먼저 자리한 탓이다. 사람들은 이런 봄날 추위를 꽃샘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그 위안이 시샘이라니, 엄살일 뿐이다. 이른 봄은 왜 추운가. 왜 봄은 시샘으로 첫발을 떼는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이 봄 같지 않다는 이 말은 세월 흠뻑 적신 사람에겐 회한의 의미가 깊다. 봄은 원래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문득 돌아서서 바라봤을 때 실체 없는 지난 시절이 봄이라는 이름으로 거기 있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도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것도 모두 다 봄이라서 서럽다. 꽃도, 풀도, 새도, 바람도, 심지어 흘러간 유행가도 봄이면 지나간 과거의 끈을 잡고 새롭게 찾아온다. 해마다 다시 찾아오는 봄은 그런 기다림 때문에 춥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서러움을 지닌다. 봄이 서럽지만 아름다운 이유는 그 그리움 때문이다. 그 풍경이 창밖에 있다. 아름다운 봄의 시작이다. 어디선가 점점 서러워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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