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념구악/ 지나간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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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념구악/ 지나간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7.04.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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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불 不 생각할 념 念 옛 구 舊 악할 악 惡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50

내가 아는 ㅈ이 국회의원이 된 후 몇몇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우리 당이 경쟁관계이었던 ㅂ당과 합당을 하였다. 그 전에 나는 그쪽 사람들을 미워하고 맹공격을 퍼부었는데, 이제는 서로 껴안고 격려하며 동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결국 정권교체라는 큰 목적을 위해 어제의 적을 받아들이고 동거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간 내가 가졌던 생각과 주관을 바꿔야 하고 미워했던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인데, 정말이지 방향전환이 좀 어렵더라.”
“그리 생각할 거 뭐 있나? 우리말에 ‘웃는 낯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도 있잖나?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정치꾼이 내편 네편 가를 시간이 어디 있어? 중국의 성현이라고 일컫는 백이도 그랬다고 하데. 불념구악!”

이 성어는《사기》백이열전(伯夷列傳) 초반에 나온다. 지난날에 저지른 죄를 탓하지 않다. 지난날의 잘못을 묻지 않다는 뜻이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임금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막내인 숙제에게 후사를 맡기려 하자 숙제가 형인 백이에게 양보하려 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며 나라밖으로 도망치고 숙제도 임금의 자리를 받지 않고 형을 따라 나섰다. 주나라에 의탁하러 갔으나 무왕이 은나라를 치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신의 몸으로 군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인이 아니다’고 간언하였다. 주위 신하들이 죽이려 하자 강태공이 ‘이 사람들은 의인이다’며 살려 보냈다. 이후 두 사람은 주나라가 종주(宗主)가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끝까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주려 죽었다.
이처럼 백이와 숙제는 한 임금만 섬기고, 악한 자와는 같이 있기를 거부하는 등 매우 결백하였고 동시에 남의 허물을 보면 참지 못하고 비판하는 포용이 좁은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에 대해 사마천은 공자의 말을 인용해 백이의 다른 일면을 말해주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원망이 적었다(不念舊惡, 怨是用希).‘ 즉,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날의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 아무리 흉한 짓을 해도 오늘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원망을 사는 일이 드물었다고 말한 것이다.
한 번 물어보자.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오늘 나를 보며 반갑게 살갑게 해오면 당신은 어찌 대할 것인가? 누그러지고 옛 나쁜 기억은 사라지는가? 아니면 낯을 돌려 외면하는가?
사람들은 복수를 주제로 하는 영화나 연속극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구원(舊怨)을 잊지 못하고 꼭 갚아야만 한다는 심정을 더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경우 그간 살아오는 동안 사이가 안 좋았거나 안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면, 그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른 체 했다.
그러나 그가 나를 반갑게 반기는 모습이면 웃는 낯으로 악수를 하지만 내심은 여전히 차가웠다. 인지상정이고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지만 헤어지고나면 후회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서로 구원을 풀고 헤어졌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이다.
평생친구인 아내가 말한다. ‘속 좁은 사람’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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