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서구 선생 비기 후천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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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이서구 선생 비기 후천이란?
  • 양상화 이사장
  • 승인 2017.04.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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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화 단군사상선양회 이사장

이서구 선생의 비기를 말하다보니 선천후천이란 말이 앞서니 독자여러분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할 것 같아 부득이 이 설명을 먼저 쓰고자 한다.
중국 송나라 때에 학자로 소강절(邵康節)은 상수론을 제창한 대학자이며, 지구의 일륜(一輪)은 12만9600년으로 일세는 12960년으로 선천이 3600년, 현천이 3600년, 후천이 3600년으로 1만800년이 지구의 륜년이고 2160년이 빙하기라고 하였다. 따라서 영국인 제임스 처치워드도 고고학적 근거로 현대인류는 일만년 미만의 역사적 인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시조이신 한인천황께서 하늘의 자미원에서 하강하시어 현 중국의 집안에 있는 한인성에서 12개국의 민족을 통합하여 한국이라 하여 통치하였다.
한인천황의 후손 한웅천왕이 배달국을 세워 한웅천왕이 18대를 통치하였으니 역년 1565년이었으며 한웅천왕 후손인 단군임검인 16대 위나임검이 수도를 영고탑으로 옮기고 만국의 제후왕들을 위나님검 28년에 이곳으로 모이도록 하여 50여 제후왕들이 모여 회의를 마치고 위나임검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제후왕들에게 여러분이 다스린 나라는 별고가 없는가 물었다. 모든 제후왕들이 우수풍족하여 별고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는데 현 중국 하남성 기현일대를 다스린 기왕(杞王)만이 다른 걱정은 없는데 하늘이 기울어질까봐 걱정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모든 제후왕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하여 이 때부터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杞憂)하지 말라고 현재까지도 우리말에서 쓰고 있으니 정확한 말이 되었다.
따라서 이 때가 지난 후 종년임검때 지이숙(支離淑)이라고 하는 학자가 태양력을 만들어 종년임검에 바쳤다고 기록되어있으니 이 때에 기왕이 말하였던 하늘이 기울어진 것이 아니고 지구가 서쪽으로 23.5도 기울어진 것이다. 따라서 일년이 365일 5시간 48분 돌아가는 태양력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16대 위나임검 28년이 단기 750년으로 이때부터 3600년이 현천이고 그 이전 3600년이 선천이므로 단군기원 750년과 배달국 1565년, 그리고 한국기원 1285년을 합치면 3600년으로 이 때를 선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천은 현천 3600년 후를 후천이라 하는 것으로 단기 4350년 후인 단기 4350년 8월 이후부터 후천이 시작된 다음 이서구 선생의 예언서 신유금풍 풍경소리라고 예언하신 것이라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 요한계시록의 예언에 한국인들에게는 2017년이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 하였으니 이서구 선생의 비기와 일치한 것으로 보아서 세계적인 예언과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친일학자 이병도 박사는 외인들이 편찬한 조선사의 편수자로써 우리 민족사를 신라 박혁거세를 만조사의 시조로 만들어놓고 그 이상의 민족사를 말살하기 위해 한단고기를 위서(僞書)라고 서울대 사학과에서 주장하고 있으니 필자가 집필한 단군조선 수도 영고답의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입중하기 위해 단군조선 12대 임검 홀달임금 50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라 기록되어있음 입증한 사실을 이곳에서 밝히고자 한다.
오성취루란 금목수화토 오성이 28숙중 서쪽에 있는 루(婁)라고 하는 별과 일직선상에 모였다는 말이다. 이것을 서울대학교 박창범 천문학 박사께서 슈퍼컴퓨터로 6개월간 계산하여보니 BC1733년에 모였던 사실을 확인한 결과 8개월의 차이로 BC1734년으로 밝혀져 영국 천문학계에 문의한 결과 시기적으로 보아 8개월의 오차는 오차라고 할 수 없다고 인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사학계에서도 한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밝혀야 할 텐데 묵묵부답하고 있으니 젊은 학자들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열린순창>에 필자가 기고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까 하여 이 사실을 밝혀둔다. 또한 이서구 선생의 비기 남조선 뱃노래에 금척옥척 자질하여 도이도복을 만든다고 되어있는데 이 금척도 인정하지 않는 현대 젊은이들의 이해를 돕고자 밝혀두고자 한다.
우리 민족의 시조이신 한인천황께서 하늘에 자미원에서 하강하실 적에 천부경과 천부인 또는 금척을 가지고 오셔서 전하였기에 고구려 주몽왕과 발해국왕 대조영이 받았으나 중국땅의 변화로 없어지고 백제 온조왕이 가져온 금척은 대대로 전해오다가 신라가 삼국통일 때 의자왕으로부터 가져갔으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당나라 정부에서 금척을 요구할 것을 걱정한 만조백관들이 경주의 산야에 묻었다.
그러나 한 곳만 되면 후일 발견될 것을 걱정하여 묘처럼 여러 곳에 무덤처럼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역시 당나라에서 금척을 요구하여 파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을 금척동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금척동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금척동이 있다. 이곳은 지형상이 금척형상을 하고 있다. 연이나 지면관계로 상세히 기록하지 못하니 양지바란다.
그리고 우리고장 회문산의 기두봉을 장군봉 또는 투구봉이라 부르고 있으나 이 봉우리가 금척봉이다. 따라서 후천에는 금척이 없어졌으니 금척의 지기가 금척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서구 선생께서 후천의 한국의 운명은 이 곳의 지기에 의해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신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으나 지면관계로 다음 기회가 있으면 상세히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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