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16) 신말주의 숨결 ‘귀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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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16) 신말주의 숨결 ‘귀래정’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7.04.27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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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전라북도지정 문화재자료 제67호 귀래정. 1457년(세조2년)에 신말주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4년 다시 세워졌다.

歸去來何事(귀거래하사)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鄕關得勝遊(향관득승유)
고향에서 경치 좋은 곳을 얻어 놀기 위함이네
山靑兼白水(산청겸백수)
산은 푸르고 아울러 물은 희며
春暖又淸秋(춘난우청추)
봄은 따스하고 또한 가을은 맑네
已斷平生趣(이단평생취)
이미 평생의 계책을 끊었는데
何曾萬戶侯(하증만호후)
어찌 높은 벼슬을 꿈꾸었으리오
委心聊自樂(위심료자악)
마음껏 애오라지 스스로 즐거워하니
得意便休休(득의편휴휴)
뜻한 바를 이루어 다시 마음이 평안해지는구나

 

 조선 초 뛰어난 문장가였던 강희맹이 귀래정에 관해 지은 연작 한시 중 한 수입니다.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시를 차용해서 이 정자의 주인인 신말주의 의중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신말주의 호가 귀래정이라 자연을 벗 삼아 처향으로 낙향해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에 대한 부러움과 기개를 표현 하였던 것이지요.
귀래정은 순창읍 남산마을(남산대)에 있습니다. 제가 순창군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어서 공부를 시작할 때 전주대 교수님이 “자네, 순창의 신, 설, 량을 아는가?” 아무리 읽었던 책을 봐도 그런 문화재가 머릿속에 없어서 “모르겠는데요”했더니 “순창에 정착한 유력 성씨를 이야기 할 때 흔히 신. 설. 양이라고 하는데 바로 고령신씨, 순창설씨, 남원양씨를 일컫는다네”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순창을 본관으로 하는 다른 문중에서 들으면 섭섭하시겠지요.
이곳 남산대는 고령신씨와 순창설씨가 하나의 가문이 되어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선비들을 배출해낸 고령신씨의 집성촌이지요. 신말주 선생과 그의 부인 설씨부인 그리고 신경준 선생을 꼽는데 슬슬 그때 그 시절로 들어가 볼까요?
때는 바야흐로 조선 세종대왕시절, 세종은 몸이 약한 아들 문종이 항상 걱정되었죠. 노심초사 아끼던 손자가 너무 어린 시절 왕위에 올라 왕권을 위협 받을까봐 집현전 학자들에게 지켜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 자리에는 신숙주도 있었죠. 신숙주는 대단한 천재였고 외교관이었고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학자였지만 온 몸으로 수양대군을 거부했던 생육신들과 구별되어서 지탄을 많이 받죠. 오죽하면 신숙주를 자주 상하는 숙주나물이라 칭했었다니까요?
이에 반해 단종 시절 급제하였던 신말주는 단종의 폐위에 반대해서 처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해서 귀래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자 하지요. 근데 세조의 노여움과 신숙주의 권유로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병을 핑계로 물러나기를 70세까지 반복하면서 전주부윤까지 올라갑니다. 그럼 일단 세거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일관문이라고 써진 솟을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분위기가 우리를 압도합니다. 일관문을 지나면 기와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름드리나무와 목련나무, 그리고 배롱나무가 사계절을 지키며 꽃을 피우고 있지요. 봄까치꽃과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답니다.
왼쪽으로 ‘오천 신익휴공 공적비’가 있어 한 사람의 생애를 찬찬히 읽고 계단을 올라가면 중문격인 여견문이 보입니다. 여견문에 올라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사당인 남산대가 있고 정면으로 자혜당이 있지요. 여기가 그 유명한 조선초의 여류 문장가 설씨부인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출생지라고도 하지요. 부호 설백민의 딸로 태어난 설씨부인은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다고 전해지면서 500년 외손봉사를 자랑할 만큼 대단한 추앙을 받고 있지요. '외손봉사'란 결혼한 여자 쪽의 부모가 후손이 없는 경우 사위되는 집안의 손자(외손)들이 제사를 받드는 것을 말하는데 귀래정공파에서는 지금가지 해오고 있습니다.
1482년(성종 13)에 강천사 부도암 건립을 위해 쓴 권선문첩(勸善文帖, 보물 제728호)속에는 1103자의 산문 뿐 아니라 강천사를 미리 설계해 본 채색그림까지 있어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지요. 특히 ‘여성’ 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여 있는데 5만원권 지폐 속 신사임당 보다도 72년이나 앞서 수려한 필체로 인과론에 의한 문장을 풀어 나갈 뿐 아니라 채화까지 그려낸 대단한 사람이었으니 어찌 흠모하지 않겠어요. 위당 정인보는 '조선조 뛰어난 여류로서 신사임당이 그림과 글씨의 미를 아울러 갖추고 있으나 문장에 있어서 설씨부인이 더 솟을 것 같고 또 사임당에 비하면 선배여서 규방학사에 특필할 만한 광채‘라고 극찬을 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순창 여인들의 길로 명명되어 있어요. 그래선지 안채로 곧장 가지 못하게 석축처럼 쌓여 있는데 그 용도가 아마도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해서 안채에 손님이 왔음을 알리고 의관을 정제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게 하려는 의도 아니었을까요?
자혜당 옆에는 남애정사가 마련되어 있어 마루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의 글 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릴 듯 설렙니다. 왼쪽에는 사당인 남산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고 신씨 문중의 연혁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구요. 다시 중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발길을 돌리면 유장각과 충서당이 있지요. 유장각은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었던 곳인데, 정면에 귀래정연혁비(歸來亭沿革碑)가 세워져 있답니다. 오른쪽 옆으로는 충서당이 있어요.
다음시간에는 귀래정 신말주 선생을 중심으로 귀래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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