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12)/ 유효기간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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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12)/ 유효기간 3년
  • 선산곡
  • 승인 2017.08.2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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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떨리고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탈리아의 테너, 팝 가수인 안드레이 보첼리의 노래가 흐른다. 이 맹인가수가 눈발 날리는 광장에서 이 노래가 아닌 ‘베사메무초’를 부르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나에게 키스를’ 이란 뜻의 그 노래를 들으면서 눈발이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 마음 속 온기가 꺼져버린 현실에 사랑은 이제 강 건너에 있다는 듯 쓸쓸했던 기억이었다.

 

“널 사랑하기, 유효기간 딱 3년.”
얼마 전 어떤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너와 나, 인간끼리의 관계를 사랑이라 한다면 그 말을 3년, 딱 3년까지만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기간을 채운 뒤 절대 시한을 늘려 유예하지 않겠다고 했다. 3년이 지나면 그런 말들은 인생의 수첩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나 자신에게 주는 각오이기도 했다.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부질없는 것이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까. 내 말을 들은 그는 픽 웃었다.
사랑, 그것도 ‘위험한 사랑’이라는 말에 가슴 설렜던 옛날이 있었다. 위험하다는 말은 내 육신의 정념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랑이 아픈 것도 그 날카로움이요, 얻고 잃어 갔던 곡절들이 상처를 주는 것도 그 날카로움의 끝자리가 분명했다. 흔히도 써 왔던 그놈의 사랑. 아닌 게 아니라 주위의 모두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한 것도 같다. 남용, 남발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미처 모른 채.
내게 지금 남아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젠 뜨거운 시선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인해 자근자근 아파오는 피 끓는 정열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미 발효 이전의 싱싱한 핏발이요 신선함이다. 이젠 때 지난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별 탈 없을 연륜을 가진 내 사랑을, 사랑 운운함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만단정회, 전전반측, 한때 사랑의 편력이 대단하다쳐도 긴 세월 산 넘고 물 건너 버린 뒤엔 부질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라는 탄식 뒤에 남은 잔잔한 여운이나마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러나 천천히 그 씁쓸한 기억에 연연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고백하자면 사랑 따위, 그런 것들로 하여 다시는 상처 받기 싫기 때문이다. 우정은 이미 덤덤해졌고 순정은 빛이 바랜지 오래 되었다. 초라한 갈망으로 그친 혼자만의 손짓이라면 그것은 사랑도 순정도 아니다.
언젠가는 사랑을 지워버린 내 무표정을 누군가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칭찬해 준다면 더더욱 좋겠다. 그까짓 사랑, 누가 찾아주기를 바라지 말 것이며 나 또한 찾지 말 것이니 바야흐로, 나는 이제 혼자 즐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준비를 해야만 한다. 혼자를 즐길 준비는 되어 있는가. 그래 그때까지다. 딱 3년이면 내가 지녔던 한때의 화려함도 그땐 빛이 바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렸다는 유행가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아직 나는 이 자레에 서 있고, 나는 아직 찌질한 사랑 운운하며 인생의 관계를 넘보고 있다.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보면 이만저만한 이율배반이 아니다.
그러니 작정하자. 3년이다. 앞으로 3년. 사랑 지니기 유효기간 딱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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