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17)/ 우연과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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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17)/ 우연과 인연
  • 선산곡
  • 승인 2017.11.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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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에 힘을 준다. 발의 힘에 눌리면서도 적당히 저항해오는 힘이 이상해졌다.
“어, 어?”
약하다는 느낌은 잠시, 그냥 발이 쑥 들어간다. 반복적으로 밟아보는 발바닥에 반응해야할 저항은 아예 없어져 버렸다. 순간 소름이 끼친다. 자동차 블레이크, 블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흔히 스펀지를 밟는 기분이라는 무저항의 느낌이 내 등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것도 너른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향하여 내리막 굽은 길을 막 들어섰을 때였다.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차는 관성을 지닌 채 멈추질 않고 다리 위에 들어섰다. 핸들을 꽉 움켜 쥔 채 달리는 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폭에 길이는 200미터가 훨씬 넘는 긴 다리였다. 거기에 난간도 없이 교각 위에 상판만 얹혀놓은 이 다리를 건널 때면 늘 오금이 저려왔다.
순간적으로 건넌 쪽을 살펴보니 다행히 다리에 들어선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먼 출퇴근 길,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여 운전시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내게 이런 일이 닥치다니. 마음속으로 사람 살려를 나는 외치고 있었다.
다리의 끝 비포장 굽은 길은 상당한 오르막이었다. 차는 그 오르막을 오른 다음에야 껄떡껄덕 저절로 멈추어 섰다. 관성이 멈춘 것이다. 차문을 열고나오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전라남북도 도계를 이루는 섬진강을 방금 나는 목숨을 걸고 건넌 것이다. 요단강이 어디였나, 십년감수한 기분이었다.
늘 지나다니는 길이었지만 민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다행이 길보다 상당히 높은 위치에 매운탕 집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그 집에 가서 전화를 빌려 써야할 판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간 매운탕 집에 여름 피서객들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산곡이성 아니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누가 나를?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야외평상 그늘 막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에 나를 알아보고 소리를 지른 사람이 있었다. 고향 한동네에 있는 자동차정비회사 사장 오용호. 그와 같이 있던 친구들이 함께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돌연히 생긴 사고로 앞이 캄캄했던 중에 아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을 때의 반가움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동차의 속성을 아는 엔지니어를 만난다는 것은 억지로 짜 맞추어놓은 우연 같았다. 놀던 일 잠깐 재껴두고 한꺼번에 일어나 차 수리에 매달린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공구 하나 없었지만 오사장을 도와 임시변통으로 차를 움직이게 했던 그들 모두 맥가이버가 따로 없었다.
“40키로 넘지 않게 운전하여 가시고 내일 공장으로 차를 갖고 오십시오.”
오사장이 속 좋은 미소로 나를 안심시켰던 그날의 일이 벌써 28년 전이다. 이 아퀴가 들어맞는 우연의 결말을 신의 가호라고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연과 인연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까지 운전을 해왔다. 우연은 인연을 따라가고 인연은 우연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오랜만에 오사장을 만나 그 시절을 회상해보는데 보기 좋게 늙어가는 그의 얼굴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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