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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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 할머니의 편지’
  • 서보연 기자
  • 승인 2018.02.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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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다녀왔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관람도 하기 위해서다. 순창에서 35명이 다녀왔다.
우리나라 첫 번째 평화의소녀상이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앉아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고 있고 그 주변에 수요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추운 날씨였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길바닥 위 은색 돗자리 위에 앉아서 마음을 모았다.
한쪽에서는 일본 아베총리의 얼굴 마네킹을 쓴 사람이 ‘죄송합니다. すみません  I'm sorry’라고 쓰인 팻말을 목에 걸고 서있다. 직장인이라는 이 사람은 “마땅히 사과해야할 일본정부가 사과하지 않으니 일본 총리의 얼굴 마네킹을 쓰고 대신 사과한다”고 말했다. 매번 수요집회에 참석했던 길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건강상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8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비가 많이 오던 그 날에 ‘길원옥의 평화’라는 이름의 음반을 내며 13살부터 꿈꿨던 가수의 꿈을 이룬 길원옥 할머니. <한 많은 대동강>, <남원의 봄> 등을 노래하며 신인가수로 데뷔하셨다.
그날 집회를 마치고, 신호를 기다리며 길에 서있던 나와 차안에 계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반갑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한 마음으로 멀리서나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는데 할머니께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내가 만난 가수 중 가장 멋진 가수가 내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6개월이 지나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찾아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그곳에서 본 길원옥 할머니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영상. 할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부터 현재의 사진까지 쭉 펼쳐지고 길원옥 할머니의 목소리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가 낭독됐다. 예쁘고 꿈 많은 13살 소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91살 할머니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읽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를 만날 생각에 참고 이겨냈다는 할머니. 하지만 지금은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 버렸다는 할머니.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일본의 사과를 받고야 말겠다고. 엄마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아픔은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작년에만 세 곳의 외국에 가신 할머니. 독일에서 이슬람무장테러단체 아이에스(IS) 성폭력 피해 여성과 만났다.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 성폭력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성과 길원옥 할머니는 한 시간 가량 아무 말 없이 서로 울기만 했다고 한다. 길 할머니는 “참아라. 지금 너의 편이 많다”며 그 여성을 위로했고 여성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위로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에 난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살아계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는 단 30명. 모두 90세를 넘겼다. 본인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이들을 위로하고 어렸을 때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안타까움이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듯이 그분들이 살아생전에 위로 받기를, 사과를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바라는 마음을 두 손에 담아 한 달에 한 번, 순창 평화의소녀상을 정돈하기로 결심한다. 작은 돈이나마 정의기억재단에 후원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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