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어우리말(58)/ ‘염치 불구’는 더 큰 결례, 꼭 ‘염치 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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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어우리말(58)/ ‘염치 불구’는 더 큰 결례, 꼭 ‘염치 불고’로!
  • 이혜선 편집위원
  • 승인 2018.03.1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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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불고 : 돌아보지 않음 → 체면을 불고하고
불구 : 거리끼지 않음 → 폭설도 불구하고

미투(#Me Too)운동이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면서 충격과 분노가 거대한 해일처럼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다.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컬어 염치라고 한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 없는 ‘염치’가 눈에 익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들은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염치 불구하고 피해자께 사죄드립니다”를 말한다. 오래 묵은 몰염치한, 파렴치한들이 갑자기 뱀처럼 허물을 벗고서 기계적으로 염치를 입에 담는다. 심지어 형식적인 염치는 커녕 그 못된 손바닥으로 끝까지 하늘을 가리려는 유명시인도 있으니 수많은 피해자들의 참담함과 망연자실함은 또 어쩌랴!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나타낼 때 이처럼 ‘염치 불구하고’, ‘체면 불구하고’와 같은 표현을 종종 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염치 불고하고’, ‘체면 불고하고’라고 써야 맞다.
‘염치 불구하고’의 함정은 다른 의미로 흔히 쓰이는 ‘불구하다’에 있다. “어머니는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밭에 나갔다”, “넉넉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유니세프를 후원하고 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등에서처럼 ‘~에도’, ‘~음에도’, ‘~ㄴ데도’ 등과 어울려 ‘불구하다’가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도 맞는 표현이라 생각하기 쉽다.
‘염치 불고’는 원래 ‘불고염치(不顧廉恥)’라는 사자성어에서 온 말이다. ‘불고(不顧)’는 ‘아닐 불(不)’과 ‘돌아볼 고(顧)’자로 이루어진 말로 한자 풀이대로 ‘돌아보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염치 불고’는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다’는 의미가 된다. 염치가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므로 염치를 돌아보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이야기 한다’는 식으로 어려운 가운데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표현법이다. 덧붙여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불고하다’가 ‘돌보지 아니하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처자식을 불고하고 재산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했다”, “그는 병든 노모를 불고하고 사방팔방 돌아다닐 줄만 알았다”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반면 ‘불구(不拘)하다’는 ‘아닐 불(不)’에 ‘거리낄/잡을 구(拘)’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로 ‘(무엇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다. 그렇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다’는 ‘염치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의미가 된다.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의 이해를 강요하는 상황이 돼버린다. 예를 들어 “염치 불구하고 부탁 좀 하겠습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체면이나 부끄러움 없이 막되게 부탁 좀 하겠습니다’는 의미가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다.
결례인 줄 알면서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때 ‘염치없지만’, ‘체면 없지만’ 이나 ‘염치 불고’, ‘체면 불고’를 써야 함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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