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41) 소나무 숲 헤치며 만난 귀래정 ‘편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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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41) 소나무 숲 헤치며 만난 귀래정 ‘편액’(3)
  • 김태현 해설사
  • 승인 2018.06.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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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귀래정은 순창읍의 남산대 마을에 위치한 정면 세칸 측면 두칸 지붕은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자입니다. 귀래정 이야기는 본지 기획연재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2016년 10월 20일(315호), ‘설씨부인을 다시 생각하다’, 2017년 4월 27일자(341호), ‘신말주의 숨결 귀래정’과 2017년 5월 11일자(343호), ‘귀래정에 올라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다’에서 다룬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4회에 걸쳐 귀래정의 편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편액(扁額) 또는 액판(額板)이란 이른바 현판(懸板)으로 통칭되는 건물의 정면, 처마 및 천장에 거는 글과 그림 등을 총칭하는 명칭입니다. 귀래정에는 현재 총 19개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신씨 세거지를 지나 귀래정 방향으로 오르면 유서 깊은 소나무들이 그림과 같이 주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데요, 계단을 오르면 첫 현판을 만나게 됩니다. 그림에는 가려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편액 순서는 세거지에서 귀래정으로 오르는 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편액을 첫 번째로 외부에 걸린 편액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첫 번재 편액의 안쪽에 걸린 편액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 걸린 순서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서 안쪽 칸에 걸린 편액 순으로 임의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열린순창> 395호 5~7번째 편액에 이어

 

8. 여덟 번째 편액
달성 서거정의 귀래정기입니다. 서거정은 4대 세종부터 성종까지 6조에 걸쳐 벼슬을 역임하였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성리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저서로는 동국통감, 필범잡기. 신찬동국여지승람 등을 남겼습니다. 당시 순창에 낙향한 신말주 선생 또는 순창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가 재밌고, 광덕산에서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세에 대한 묘사와 비유도 역시 문장가다운 표현입니다. 

 

>>귀래정기
(...)일찍이 듣기로 순창 남쪽에 울퉁불퉁 아름다운 산이 있으니 그 형세가 대단히 기위하여 꿈틀거리고 휘돌아 가는 모양이 용이 뛰어오르는 것 같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것 같기도 하며, 어찌 보면 구부린 것 같고, 또는 일어난 것 같은데, 조금 내려와 동쪽에 봉우리가 뭉쳐 이루어졌다. 그 봉두 평평한 땅에 3,4기둥을 세워 정자를 지었는데 정자 좌우에 죽림과 박달나무 숲이 컴컴할 만큼 울창하여 사시 계절마다 바람과 비, 눈과 달이 알맞으니, 그 가운데 화원을 만들어 홍백주자의 각종 꽃들이 피고 지며, 사시를 통하여 다함이 없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남원의 보련산과 곡성의 동지악이 푸른빛을 띠고, 옹기종기 솟은 것이 마치 손을 모두어 조현을 하는 것과 같고, 그 밖에 연하여진 산봉우리와 길게 이은 수풀로 산자락이 안개, 구름 사이에 기이한 현상으로 안석 아래 모여든다. 적성에서 발원한 물은 북에서 천천히 남으로 흘러 구불구불 돌아 두 골짜기 사이로 흘러나오고, 또한 물이 돌아 흐르는 동쪽엔 광덕산 물이 용이 서린 듯 또는 뱀처럼 구불구불 봉하를 감돌아서 적수와 합수하니 물이 깊고, 맑고, 깨끗하여 두 손으로 움켜 떠 보고 싶고 얼굴을 비쳐보고도 싶다. 마을 언덕에 이르르면 백리안통을 바라볼 수 있고, 누런 밭둑과 푸른 등나무가 원근을 수놓았으니 밭가는 사람, 소 먹이는 사람, 나무하는 사람, 고기 잡는 사람, 사냥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리를 맞추어 자연을 구가하고, 놀러 다니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들 우마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것이 가히 앉아서 볼만하다. 공이 날마다 건 쓰고 삼신 신고 그 가운데서 읊조리며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즐겨 스스로 만족스럽다. 때로는 개를 이끌고 매를 안고 여우와 토끼를 사냥하며, 혹은 낚시로 물고기를 낚으며, 산을 찾아 향기로운 나물도 캐고, 순채국 농어회 죽순과 양하를 찾아 구우며 가을을 보내고 봄을 맞으니, 강촌의 사시 풍경이 무궁할뿐더러 공의 즐거움이 또한 무궁하다....공이 일찍이 공명의 급류 가운데 있다가 전야로 돌아와 유유자적한 지 여러 해이니 비록 다시 조정에 나아가 고관을 지내고, 타일에 공명을 세우고 용퇴하더라도 이 정자가 아니고 무엇이 있으리오. 이름하여 역시 귀래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거정은 계속 탐묵하여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머리털이 모지라지고 말았다. 공의 그 귀거래의 생각을 고안에 견주어 깨닫고 귀래의 뜻을 아일에 이루어 시종이 온전한 사람에게 어찌 부끄러움이 깊지 않으리오. 거정이 벼슬을 사퇴하기를 성상께 청원하여 공을 쫓아 한가함을 얻으면 이 정자에서 반드시 귀거래사를 읊조리고 지족편을 노래키로하며 나의 글을 마치노라.

 

9. 아홉 번째 편액
풍양 조인영의 시입니다. 조인영선생은 조선조 24대 현종 때의 대신이고 호는 운석 문장 글씨 그림에 능하였다고 하고 벼슬은 영의정을 지냈다고 합니다. 편액의 제목은 귀래정중수기이며 후대에 귀래정을 중수하며 기록한 것으로 때는 1818년입니다. 그 내용은 귀래정공의 덕과 재능에 대한 칭송과 귀래정 설립과 명칭에 대한 이야기와 아래와 같은 중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자가 오래되어 허술한 지금, 공의 후손 제군자가 공의 유지가 오래가면 드디어 형적이 없어질까 두려워서 돈을 거두고 중수하고 아울러 예정의 기록과 약간의 시를 수집하여 인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니 인이 분수없이 예의에 거슬러 어찌 공의 뜻을 만족하게 밝힐 수 있으리오. 오히려 논자가 공의 처소를 관람하고 그렇게 된 까닭을 알아주면 이 기록은 곧 그 사람의 기록과 같으리라.

 

10. 열 번째 편액
하서 김인후 선생의 시입니다. 하서 김인후 선생에 대해서는 본지 2017년 12월 7일자(371호) ‘훈몽재에서 하서 선생을 만나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귀래정
동쪽 울 밑에서 휘파람 불고 가니
죽림 속에 백년의 정자일세
좌중 손님 바야흐로 흥을 띠었고
지저귀는 새들도 속삭이는 듯하구나
바라보는 산과 물은 한껏 푸르고
으슥한 곳 즐거운 정담이 청아하구나
자연히 깊숙한 뜻 숨어 있으니
반드시 도연명을 생각하지 않으니

옛 사람 떠나간 지 오래되었건만
지난 자취 정자에 머물러 있네
후손에게 남긴 업 멀리 생각하니
유달리 나그네 된 정이 놀랍네
긴 대숲은 가을빛에 깨끗도 한데
푸른 나무 낮 그늘 맑기도 하네
황혼 뒤에 취기가 깨고 나서는
번뇌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밝은 달이 기다려지네
주인이 너무나 손님을 사랑하기에
좋은 때 술단지로 잔치를 벌였네
노래 소리에 한없이 취하고
춤사위에 갈 길도 잊었네
술잔이 오고 가는 가운데
옛 친구 새 친구 모두 다 정다워라
나도 모르게 대나무밭으로 가는데
그 누가 전해주리 암석 위의 시를!

사면의 푸른 산이 좋아도 보이는데
강천의 한줄기가 동쪽으로 달려가네
긴 대 늙은 나무와 전자 또한 예스럽고
좋은 새와 한가한 꽃 세월이 더디구나!

시구 중에 순창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강천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이 특색있고, 오감을 자극하는 표현이 다수 세련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11. 열한 번째 편액
이 편액은 신재 김진종의 시입니다. 신재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입니다. 1496년생으로 1528년 대과급제하고 1545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순창으로 귀향 와서 이곳에서 10여년 유배생활하다 별세하였습니다.
이 시는 순창에서 유배생활 중에 귀래정에 올라와서 지은 시입니다. 필자가 아무래도 귀향의 처지이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온 귀래정 선생과 교감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고, 표현마다 필자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사무치게 묻어나옵니다.

 

아 일찍이 고향에 갈 수 없는 몸
여기 와서 이 정자 사랑하게 되었네
몸은 우주 안에 있어도
예나 이제나 슬픈 세월
시를 읊으면 날은 저물고
강산풍월은 맑기도 하여라
머나 먼 고향생각
오늘도 잠 못 이루네
나그네 정자에 오르니
수풀은 옛날과 같고
청화하고 좋은 시절 만나서
노래하고 시 읊으니 해 지는 줄 몰라라
대밭길에서 사람들은 헤어지고
가시나무 사립은 내 알바 아니다
깬 듯 취한 듯 미친 듯이 읊조리는 중에
내 뜻을 말하니 시가 된다네
이 고장 천년 만에 사람 얻어 신기한데
율리와 암산 이름 같이 달리네
가엾은 그 얼굴 어이 그리 수척한가?
돌아온 의미를 스스로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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