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구과족/ 자리 보전에만 골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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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과족/ 자리 보전에만 골몰한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8.07.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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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 막을 두 口 입 구 裹 쌀 과 足 발 족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80

《사기》범수ㆍ채택열전(范睢ㆍ蔡澤列傳)에 나온다. 입을 닫고 발을 싸매다. 어떤 의견을 말하지도 않고 무슨 일에 함께하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나, 시류에 따라 바뀌는 세상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비유하여 쓰는 말이다.
그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며 나라를 쥐락펴락하였다. 그리고 이른 바 ‘은덕’을 입은 최고위급 참모와 관료들, 그리고 의원 나리들이 그 고귀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누리고 고액의 봉급을 받고 많은 판공비를 즐겼다. 그러면서 위의 의중을 헤아리며 아전인수하고, 위의 지시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위의 의중에 맞춰 정책을 만들어 그대로 투박하고도 무식하게 밀어 붙였다.
세상이 바뀐 이제, 이 세충(稅蟲)이들의 모습을 보라. 이제 보니 자기가 행한 일들이 잘못된 것인지 비합리적인지도 알아보려거나 따져보지도 않은 정말이지 염치도 양심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쏠린 죄를 극구 부인하며,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어떤 자는 내심으로 ‘정말 어렵게 줄을 대고 아부하여 얻은 자리인데…’ 하며, 잘못 말했다가 쫓겨날까 두려워서 그랬었다고 변명하고 있다. 어떤 자는 아예 ‘입을 다물며 발을 싸매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쯤 고개를 다시 들어야 하나 하며 아직도 간을 보고 있다.
이른 바 ‘배신의 계절’이다. 전국시대 위(魏) 사람 범수는 변설에 능한 자였다. 위나라 중대부 수고(須賈)가 제에 사신으로 갔을 때 범수가 수행하였는데 억울하게 기밀누설의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할 뻔 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고치고 진으로 도망쳤다. 당시 진 소왕(昭王)은 재위 36년이나 되었지만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그녀의 동생인 양후(穰侯)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범수가 1년 여간 왕을 면담하지 못한 가운데, 그가 파악하게 된 것은 소왕의 근심거리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의 주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소왕에게 장문의 밀서를 보내 면담하기를 청했다. 밀서를 읽고 난 소왕은 감동하여 범수를 불렀다. 범수는 궁에 들어간 후 왕이 나타날 즈음에 일부러 내전으로 들어갔다. 왕이 나타났을 때 환관이 범수를 내쫓으려고 하였으나 짐짓 못 들은 체하며 중얼거렸다. “진나라에 왕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태후와 양후가 있을 뿐이다.” 이를 들은 소왕이 곧 궁으로 범수를 청해 들이고 사과했다. 그리고 시위들과 환관들을 물리치고 범수와 독대를 했다. 소왕이 무릎을 꿇었다.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범수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세 차례나 “음, 음.”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소왕은 범수의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고 계속 가르침을 청했다. “선생은 끝까지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자기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려는 것을 본 범수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은 외국에서 들어온 나그네로서 대왕과의 사이는 멂니다. 그리고 신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두 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뿐인데다가 또 왕과 가까운 골육 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리석은 저는 왕께 충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아직 왕의 속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왕께서 세 번이나 물으시는데도 감히 대답을 드리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신이 형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신이 걱정하는 바는, 신이 죽은 후에 천하 사람들이 신이 충성을 다하고도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고 발을 동여매며(두구과족) 진나라로 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왕이 마침내 마음을 움직여 범수를 바로 객경으로 삼고 그가 건의하는 계책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에 양후 등이 범수를 모함하고 헐뜯었지만 소왕은 범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년간 범수의 진언이 모두 받아들여지자 범수가 다시 기회를 얻어 진언하였다. “진을 강하게 하려면 우선 태후와 양후 등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나무열매가 지나치게 매달리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의 생기를 해친다. 도읍이 너무 크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신하가 높아지면 임금은 낮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왕께서 지금 결단하지 않으시면 만세 후에 진나라를 다스릴 사람은 왕의 자손이 아닐 것입니다.”
소왕이 마침내 태후를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조정의 일에 나서지 않게 하고, 양후, 화양군, 고릉군, 경양군 등 왕족과 귀족세력들을 지방으로 보냈다. 이어서 범수를 상국으로 임명하여 재상으로 삼는 한편, 응(應)땅을 봉지로 내리고 응후(應侯)로 책봉했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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