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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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냥 좋다
  • 서보연 기자
  • 승인 2018.08.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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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2018년도 상반기를 보내고 8월이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어서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농부는 씨를 뿌리느라, 학생은 공부하느라, 직장인은 일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지금 무더운 여름. 사상 최대의 폭염에 매일 긴급재난문자가 핸드폰에 도착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무더위 속에서 영혼의 가출을 알아차리고 다시 찾아올 때면 ‘내가 너무 빠르게 살고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느리게 살고 싶어 내려온 순창인데 가끔은 도시에서 처럼 빠르게 사는 나를 보며 깜짝 놀라곤 한다. 주변 이웃 말들도 다르지 않다.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내려왔지만 그런 낭만적인 일상은 말 그대로 영화 속 장면 일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처음 짓는 농사에 정신이 없고, 뙤약볕에 애를 쓰지만 돈이 안 되는 현실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매일 고민한다. 몇 만평 농사를 짓는 대농은 나름 돈을 벌지만, 너무 많은 일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차를 마시고 마음을 만지는 고요한 시간을 가지기 쉽지 않다.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영혼을 털리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가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누구와 달리고 있는지 고민하는 때가 온다. 인디언들은 가끔 달리는 말에서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자신의 영혼이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바른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영혼 없이 도착하지 않기 위해서다. 빨리 달리고, 열심히 달렸는데 엉뚱한 방향에 있는 웃기고도 허탈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경주마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다. 내 영혼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살펴본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얼마 전 방과후아카데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나의 좋은 점’을 적어보라고 했다. 어려워했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 전 좋은 점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좋은 점 말고 안 좋은 점 쓰면 안 돼요? 그건 잘 쓸 수 있는데”라고 말했다. 안타까웠다. 좋은 점으로 가득한 학생들이었다. 어떤 학생은 따뜻하고 친구들을 잘 챙기며 친절했다. 다른 학생은 발표 능력도 뛰어나고 리더십이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센스가 좋고 잘 꾸몄다. 다른 학생은 이해능력이 뛰어나고 응용능력도 좋았다. 이렇게 좋은 성품과 장점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의 좋은 점’을 쓰기를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아 맞다. 나 이런 점 좋지’, ‘이런 칭찬도 들었어’, ‘이런 건 잘하는 것 같아’ 라며 하나씩 자신의 좋은 점을 적어 내려갔다. 종이에 적힌 아이들의 글이 웃음을 만든다. ‘키가 크다’, ‘요리를 잘 한다’ 부터 ‘사진발이 잘 받는다’, ‘뱃살이 귀엽다’는 글까지 아이들다운 표현이 재밌었다. 자신의 좋은 점을 잘 찾아낸 아이들이 기특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잡았던 글은 ‘나는 소중하다’, ‘나는 내가 좋다’, ‘내가 그냥 좋다’는 글이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어떤 특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여서 그냥 좋다는 글이 그냥 좋았다. 조용하게 외쳐본다. ‘나는 내가 그냥 좋다.’
저 멀리 있었던 영혼이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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