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복 73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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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복 73주년에 부쳐
  • 선재식 독자
  • 승인 2018.08.0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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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선두열을 기립니다. 광복 73주년을 맞아 저의 선친 말씀을 토대로 적습니다.
제 선친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 순창읍 무수리 요복(묘법)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겨우 열 살 무렵에 할아버지가 반일감정을 품고 있다는 누군가의 밀고로 경찰서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돌아와 끝내는 고문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형제자매가 3남 3녀인데 선친 남매도 3남 3녀였는데 할아버지를 그렇게 여의고 남매는 뿔뿔이 흩어져 첫째(큰아버지)는 목포로, 둘째인 선친은 동생(두열)과 함께 서울로 떠났습니다.
풍산면 용내마을이 친정인 할머니 이씨는 그 길로 적성 책여산 황굴로 들어가 보살이 되어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공을 들였는데, 엄동설한에도 새벽에 산 아래 적성강에 내려와 얼음을 깨고 찬물에 머리를 감고 자식들을 위한 공을 들였답니다. 인근마을의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가리켜 “물오리 할매”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황굴 터만 남아있을 뿐 건물 흔적도 없지만, 할머니가 바위를 쪼아 구멍을 내고 보리쌀을 갈았던 확독의 형체는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서 그곳을 찾을 때마다 숙연하게 할머니의 흔적을 느낍니다.
어린 나이에 동생과 함께 갖은 고생을 하던 선친은 청년이 될 무렵 시계 금은방에서 일을 하셨고, 작은 아버지(두열)는 성격이 괄괄하고 체격도 좋고 힘이 장사라 ‘삼쇠’라 불렸는데 품성에 걸맞게 만주로 건너가서 항일무장투쟁하는 독립군이 되었습니다.
선친은 다행히 민족의식이 있는 금은방 주인과 함께 돈을 모아 만주에서 밀사가 오면 군자금을 전달하곤 했다는데 한번은 결국 꼬리가 잡혀 주인과 함께 경찰서에 끌려가 전기고문 등 갖은 고문을 당했답니다.
밀사가 내려올 때 선친의 동생(두열) 소식을 가져오곤 했는데, 해방이 되기 몇 해 전에는 암호 형식이 아닌 순 우리글로 쓴 편지에 ‘왜놈과 싸우다 크게 총상을 입었는데 아무래도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죽기 전에 한번 와 주었으면 한다. 보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고문을 당한 고통과 두려움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끝내 찾아가지를 못했다며 평생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해방이 되고 독립한 사업이 번창하여 친척 조카들에게는 성공한 삼촌이고, 찾아가면 용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피난 내려와 늦은 나이에 제 어머니를 만나 6남매를 낳았는데, 정작 우리 형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제 부친은 이미 노인이 되어 경제력이 없으니 안타까웠을 겁니다.
사업이 잘되어 돈이 쌓일 때는 자식이 없고 자식들이 성장할 때는 있어야할 돈이 없으니 “돈과 자식을 바꿨구나. 허허…” 하시면서도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측 대표단과 기자들이 평양에 다녀와 북한의 모습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는 모습에 벅차오르도록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마 제 부친의 생각에는 남북이 자유로워지면 북쪽을 통하여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돌아가신 동생의 소식을 알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였음을 한참이 지난 훗날에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국민의 촛불’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관계를 냉전에서 평화로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제가 할 일은 선친의 한이 된 ‘독립군 선두열’의 흔적을 찾아 선친과 조상님들의 영령에 바치는 일이 후손의 도리이자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영령을 위하는 일이기에,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될 책무로 받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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