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충관/ 어찌나 화가 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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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충관/ 어찌나 화가 나든지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8.10.11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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怒 성낼 노 髮 머리카락 발 衝 찌를 충 冠 갓 관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86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 화가 나 머리카락이 곤두서 관(冠)을 찌르다. 노여움으로 머리털이 관을 추켜올린다는 뜻으로, 격노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를 들여다보면서 불현듯 옛일들이 생각났다.
  보병 소대장 시절, 말년 병장 한 명이 큰 사고를 쳤다. 인근 술집에서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고 여자까지 건드린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내가 야전삽을 들고 ‘그 놈을 잡아오라.’고 소리치며 방방 뛰었다. 이때 당번병이 담배 한 대를 주며 불을 붙였다. 원래 담배를 안 피던 나였지만 무심코 받아 입에 물었다. 몇 초가 지나는 가운데 나의 심장의 박동이 낮아지고, ‘내가 그놈을 팬들 뭐가 해결되겠나?’하는 생각이 들며 단 1분 사이에 분노조절이 되었다. 만약 그 담배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 녀석의 다리가 부러졌거나 허리를 다치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직접 한 일도 아닌 일로 괜히 상관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화난 표정에 침울해 하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뭐 화난 일 있소?’하고 물었으나 난 꽥! 소리치고 방에 쳐 박혔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뽀로통해서 밥도 챙겨 주지 않았다. 더 화가 난 나는 아내와 대판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급기야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고 ‘사네 못 사네’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중에 아내가 나의 억울함을 알게 되었고, 나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겼던 나의 행동을 자책하였다. 아내가 방안의 거울을 보며 그 상관에 대하여 한참 욕을 해댔다. 분이 풀린 아내가 그제야 손을 내밀었다. 네 남편인데 어쩌겠어, 응?! 
  
  전국시대 후반, 조 혜문왕(惠文王)이 초의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넣었다. 진 소왕(昭王)이 이를 알고 ‘진의 15개성과 화씨벽을 교환하자’ 고 제안해 왔다. 조왕은 대장군 염파 등 여러 대신들과 상의했으나 마땅한 방책을 내지 못했다. 이때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이 인상여를 추천했다. 왕이 인상여를 불렀다.
  “진은 강하고 조는 약하니 그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이 요구한 것을 조가 들어주지 않으면 잘못은 조에 있게 되고, 조가 벽옥을 주었는데도 진이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에 있게 됩니다. 이를 비교할 때, 저쪽 말을 들어 진에 책임을 지우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적임자가 없다면 신이 벽옥을 받들고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에 들어오면 벽옥을 진에 두고 오겠지만,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벽옥을 반드시 조로 온전히 가지고 오겠습니다(완벽귀조, 完璧歸趙).”
  진왕이 장대에 앉아 인상여로부터 벽옥을 받았다. 진왕은 크게 기뻐하며 주위 비빈들과 시신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진왕이 약속을 어기고 성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상여가 앞으로 나아갔다.
  “대왕, 이 벽옥에 작은 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왕이 벽옥을 건네주자 인상여는 그것을 손에 쥐고 뒤로 물러나서 기둥을 등지면서 노한 얼굴로 꾸짖어 대었는데, 그의 머리카락이 곤두서 관을 찌를 정도였다(노발충관, 怒髮衝冠).
  “조의 신하들이 ‘진왕이 욕심이 많고 나라의 힘을 믿고 거짓말을 한 것이니 주지 말자.‘고 주장했으나, 저는 ‘필부의 교제에도 거짓은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대국의 교제에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하며 이 벽옥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끝까지 저를 강박하시어 이 벽옥을 빼앗으려 하신다면 제 머리는 지금 이 벽옥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져버릴 것입니다.”
  인상여가 기둥을 노려보면서 당장 구슬과 함께 머리를 들이 받을 태세를 보이자. 진왕이 벽옥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례를 사과하였다. 그리고 지도를 내놓고 손가락으로 15개성을 짚어가며 성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상여는 진왕이 말로만 그리 할뿐 실제로는 성을 받을 수 없다고 짐작하고 다시 말했다.
  “이 화씨벽은 천하 사람이 다 알고 있듯이 전래(傳來)의 보물이라 조왕도 보내기 전에 닷새 동안 재계(齋戒)했습니다. 그런즉 대왕께서도 닷새 동안 재계하시고 구빈(九賓)의 대례(大禮)를 베풀어 주십시오.”   
  진왕이 할 수 없이 이를 승낙하고 인상여를 객사에 묵게 했다. 하지만 인상여는 진왕이 재계를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수하에게 허름한 옷을 입히고 지름길로 화씨벽을 조에 보내버렸다. 진왕이 재계하고 구빈(九賓)의 예를 갖추고 나오자 인상여가 앞으로 나갔다. 
  “진은 목공(穆公)이래 20여 임금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신 분이 없었습니다. 저도 대왕에게 속을까 걱정되어 화씨벽을 이미 조에 보내버렸습니다. 왕을 속였으니 저를 삶아 죽이셔도 좋습니다. 다만, 신하들과 잘 의논하시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진왕과 신하들이 크게 놀라 얼굴을 마주보며 낭패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신하들이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왕이 손을 저었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 해서 벽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조와 우호관계만 끊어지고 말 것이오. 오히려 후대하여 조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소. 벽옥 하나로 조가 우리를 배반이야 하겠소?”  
  인상여가 빈객의 대접을 받은 후 마침내 무사히 귀환하였다. 조왕이 인상여의 용기와 지혜를 크게 칭찬하고 상대부(上大夫)로 임명하였다.

  이 고사에는 두 개의 성어가 나온다. 그 하나는 인상여가 진에 가지고 갔던 화씨벽을 온전히 다시 가져왔다는 ‘완벽귀조’다. 물건을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고 원래의 주인에게 온전하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완벽(完璧)’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또 하나는 ‘노발충관’이다. 노기충천(怒氣衝天), 노발대발(怒發大發)과 거의 같은 뜻이다. 의사들이 ‘분노할 일이 있으면 분노해야 몸에 이롭다.’고 말한다. 또 아주 잘못한 일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방귀 뀐 놈이 성내듯이 엉뚱한 일에 과도히 화를 내거나, 사소한 일인데도 ‘욱’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내어 일을 그르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최근 떠들썩했던 그리고 천하의 공분을 엄청 사고 있는 모 대기업 세 모녀의 앙칼진 그 목소리!!! 나쁜 분노로 그러지 말아야 할 노발충관의 극치다. 대기업 자식들의 관행? 집안 내력? - 중증분노조절장애자인 것이다. 정말이지 격리되어야 할 중환자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간 ‘고객은 왕’이라며 조그마한 가게나 식당에서 서비스가 안 좋다 불친절하다며 트집을 잡고 호통을 치며 화를 내던
그 ‘손놈’ 짓을 한 나의 모습이…, 그리∼ 위세를 떨었던 것이다. 만원도 안 되는 갈비탕 한 그릇에 말이다. 아내 말대로 조용히 먹고 다시 안가면 되는 것을…,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 화씨벽(和氏璧):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강가에서 원석을 발견하여 문왕에게 바쳤고. 문왕이 도장을 만들었다. 이후 천자를 계승할 때 쓰였다. 조에 들어갔다가 천하를 통일한 진에서부터 천자의 계승용도로 사용되었다. 후한과 위나라, 서진, 동진, 수나라, 당나라를 거쳤다가 오대십국 시대에 후당 마지막 황제 이종가가 천자옥새를 끌어안고 분신자살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전해진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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