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구용/ 아첨하며 얼굴을 꾸미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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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구용/ 아첨하며 얼굴을 꾸미는 행동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8.11.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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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 언덕 아, 諛 아첨할 유, 苟 구차할 구, 容 얼굴 용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88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 남에게 아첨하며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는 행동을 말한다.

베이징 시절, 필자가 업무상 관계로 안면을 가까이 하게 된 중국 모 부처의 부부장(차관급)은 격의가 없는 분이셨다. 사는 곳이 가까워 자연스레 상호 방문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해 춘지예(春節. 음력 설)에 그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어디선지 자주 전화가 오고 또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부부장님, 인기가 참 많으시네요. 평소에도 늘 이렇습니까?”

“그게 아니고…, 앞으로 부장(장관)이 될지 모르니 눈도장 찍어두자는 게지!

“이런 수하들을 위해서라도 꼭 부장으로 올라 가셔야 되겠습니다.”

4년 후 춘지예, 다시 그 분을 만났게 되었다. 이미 퇴직하여 힘이 없어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뜻밖에도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갓끈 떨어지면 하릴없는 참새만 날아온다던데…. 혈색도 좋고 목소리도 예전과 다름없네요.”

“무슨 말씀을! 사실 젊은 시절 나도 아부를 좀 했었지. 어쨌거나 그 덕택으로 좀 높아지니 이제는 아부를 받게 되고 또 그 구차한 얼굴들을 지겹게 보아 왔는데…, 이제는 해방되었다네. 오히려 축하받고 싶군. 그리고 시도지교(市道之交)란 말을 들어 보셨나? 난 오래전부터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네.”

중국 전국시대 후반, 조의 명장 염파는 전쟁에서 공로를 많이 거두어 하사받은 재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어울리므로 식객이 넘쳤다. 그러던 어느 해, 진이 조를 치므로 염파가 장평(長平)에 나가 공격보다는 방어에만 힘썼다. 속수무책인 진이 ‘진의 어려운 상대는 조괄이다. 조괄이 장군이 될까봐 두렵다.’ 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니 조왕이 속아 염파를 내려오게 하고, 병법이론만 알아 지상담병(紙上談兵)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는 조괄을 장군으로 삼았다. 그 결과, 조의 40만 대군이 전멸하는 중국 역사상 최대·최악의 참패를 가져왔다.

그런 몇 년 후, 북쪽의 연이 세력이 약해진 조를 치니 왕이 염파를 다시 장군으로 삼아 대처했다. 염파가 마침내 연을 대파하고 도읍을 포위하였다. 다급해진 연이 다섯 개 성을 내어주고 화친을 청했다. 이러한 그의 활약과 공로로 신평군(信平君)에 봉해지고 재상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전에 장평에서 소환되어 세력을 잃었을 때, 그의 식객들이 모두 가버렸었는데 그가 다시 장군으로 돌아오고 재상이 되자 많은 식객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처럼 염파에게 아첨을 떨며 구차스러운 짓을 하는 것이었다(阿諛苟容).

이에 역겨움을 느낀 염파가 식객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말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와서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상공은 아직도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계십니까? 원래 천하 사람들은 모두 장삿속으로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市道之交). 상공에게 세력이 있으면 따르고 세력이 없으면 상공에게서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떠났다하여 무슨 원망을 가지십니까?”

이 성어와 관련하여 《전국책(戰國策)》에 맹상군의 일화가 있다. 맹상군이 제에서 쫓겨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복직되어 돌아왔을 때, 국경까지 마중 나온 담습자(譚拾子)가 그에게 물었다.

“군께서는 제의 사대부에게 아직까지 원한이 있습니까?”

“그렇소. 그들을 죽여야 분풀이가 될 것 같소.”

“그런데 세상일에는 반드시 온다는 필지(必至)라는 것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라는 필연(必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아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필지라는 것은 죽음입니다. 필연은 부귀해지면 따라다니고 빈천하게 되면 떠나 가버린다는 것이지요. 저잣거리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저잣거리는 아침에는 넘치지만 저녁이 되면 텅 빕니다. 그것은 아침에는 저잣거리가 좋고 저녁에는 저잣거리가 싫어지기 때문이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귀군께서도 원한을 덮어두셔야 합니다.”

맹상군이 이 말을 듣자 원한을 품어 적어두었던 5백 여 명의 명단을 칼로 잘라 없애버리고 다시는 말거리로 삼지 않았다.

이 고사에서는 두 개의 성어가 나온다. 남에게 아첨하며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민다는 ‘아유구용’이다.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알랑거리며 구차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도지교(市道之交, shì dào zhī jīao)’이다. 시장의 장사치와 같이, 이(利)가 있으면 모이고 이가 없으면 헤어지는 사귐 즉, 시장 장사꾼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진실치 못한 사귐을 뜻한다. 죽음을 함께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그런 사이 즉, 문경지교(刎頸之交)와는 반대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라는 속담과 비슷한 의미이다.

아부? 정말 나쁜 건가? 사람들은 돈이나 권세 앞에 또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리는 아첨은 나쁘다고 큰소리친다. 윗자리에 앉아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불이익을 준다고 내세우고, 아랫사람도 알랑거리는 것과는 담을 쌓았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상사는 알랑거리고 비위를 맞추는 부하를 좋아하고, 부하들은 은연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사가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아첨하는 경향이 많다.

사람들은 조직사회에서 적절한 아부와 이를 적절히 또는 모른 척 받아들이는 것은 조직의 원활한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높은 사람이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이 ‘아부는 아예 나쁜 짓’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아랫사람이 너무나 경직되고 사무적으로만 상사를 대하게 된다면 어찌될까? 아마도 조직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좀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적절한 수준의 아부가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러면 적절한 그곳이 어디쯤일까?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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