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13) 탐욕이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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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13) 탐욕이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8.12.19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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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다툼과 폭력, 전쟁으로 끊임없는 재앙을 만들면서 살고 있다. 선량한 사람들이 어느 날 난데없이 쳐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죄 없이 살상당하고 집은 소각당하면서 불행으로 울부짖는다. 지금도 지구의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는 인류의 불행이다. 대형 건물과 다리의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나 화재로 인해 일어나는 참사의 대부분은 돈을 사람보다 중시하는 절제 없는 이득추구 때문에 발생한다. 돈 지위 권력 명성의 이익에 대한 육신적 욕망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불행을 만든다. 탐욕은 양심을 마비시켜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행하고 도덕의 이름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며 진리의 이름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종교의 이름으로 반종교적 행위를 하며 선의 이름으로 악행을 하고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며 국민의 이름으로 반국민적 행위를 저지른다.
인간이 만든 재앙은 물질중심의 상극적 가치관에서 발생하므로 가치관을 사람중심의 상생적가치관으로 바꾸지 않는 한 재앙은 끊임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것에서만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재산의 증식, 지위의 상승, 권력의 커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과 명성의 확대를 인생의 성공으로 안다. 그들은 부귀로 자기를 장식하여 포장하고 돋보이게 하여 추악한 약점을 감출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신적 가치를 잃어버림을 모른다. 부귀로 자기의 사악함을 장식하고 포장하여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정신이 만들어낸 순수한 아름다움을 당할 수 없으며 돈의 커짐은 지혜의 커짐만 못하고 세속지위의 상승은 정신적 수준이 높아짐만 못하며 권력이 커짐은 도덕적 영향력이 커짐만 못하고 명성의 확장은 고요하고 평화로움으로 마음을 지킴만 못하다. 

절제는 최선의 의술이다.(영국속담)
행복은 절제에서 나온다.(괴테)
절제는 탐욕의 병을 치료하는 묘약이다. 대나무를 군자라 함은 절제의 마디와 비움의 조화로써 사철 푸름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절제와 비움이야말로 인류가 늘 푸르게 살 수 있는 지혜이다. 탐욕은 정신을 병들게 하고 절제는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식탐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하고 언행을 절제하면 언행이 건강해지고 생각을 절제하면 마음이 건강해지며 물욕을 절제하면 정신이 건강하고 인류가 탐욕을 절제하면 세상이 건강해진다. 탐욕은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고 절제란 탐욕으로부터 조화로움의 적당함을 지키는 진리이다. 지혜란 불행을 피하는 눈이며 어리석음이란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인간이 정신적 가치관을 추구하지 않고 물질적 육신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탐욕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질적 가치관이 너와 나의 소통을 막는 단절을 만든다. 물질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막힘과 단절이 있어 다툼이 있지만 정신은 공간적이므로 막힘과 단절이 없는 하나의 세계로 분쟁이 없다. 정신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 신의 가치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정신이 있고 인간의 육신은 너와 나로 분리되어 있지만 정신 속에는 하나의 같은 신이 살고 있다. 정신을 자신의 주체로 삼는 사람은 나와 남을 하나로 보며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임으로 남을 상해하지 않는다. 육신 중심의 가치관은 상극의 가치관으로 필연적으로 서로를 상해하는 재앙을 만든다. 모든 증오와 폭력은 육신적 가치관에서 나온다. 어떤 경우도 다툼과 폭력은 신의 뜻이 아니다.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정신에 있는 신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적 생각에는 사리의 필연을 보는 눈이 없고 정신적 생각에는 사리의 필연을 보는 눈이 있다. 육신이 낳은 욕망의 씨앗을 마음에 심고 키우면 분노할 일, 슬프고 괴로운 일을 열매로 얻고 정신 속의 신의 마음을 심어 가꾸면 기쁨과 즐거움의 열매를 거둔다. 육신적인 욕망을 추구하면 이해득실을 다투면서 희로애락으로 마음이 지치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욕망을 추구하면 이해득실과 희로애락의 풍파가 없는 고요한 경지에 이른다.
자기 밖의 사물을 눈과 귀가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욕심이 생기고 욕심은 일을 만들고 일이 많아지면 근심 걱정이 많아지며 마음은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잃는다. 보고 듣는 기회를 줄이면 욕망의 유혹이 적어지고, 말보다 침묵을 즐기면 실언으로 궁지에 몰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육신적 욕심을 비우면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고 고요함과 평화로움에는 정신의 자유와 지혜가 함께하며 비용이 들지 않는 안락이 있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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