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44)/ 그 지독함의 깊이를
상태바
길위에서서(44)/ 그 지독함의 깊이를
  • 선산곡
  • 승인 2018.12.26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여름이 지나갈까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치러 온 기사에게 물었다.
“그럼요. 지나갑니다.”
드라이버를 돌리던 손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며 그가 대답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종교적 명언도 있지만 나 보다 더 힘들게 여름을 견디어 내는 사람이 달래듯 하는 말에 순간 가슴이 찡해져 왔다.
그런 여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가을, 잎사귀들은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다. 올 가을 단풍은 곱지 않으리라는 보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인내의 한계를 가르쳐준 폭염 때문에 아마도 나뭇잎들도 더위 먹은 뒤끝이 당연히 그러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에. 이토록 단풍이 아름다웠던 해는 일찍이 없었다. 정말 보이는 풍경마다 아름다웠다.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기온은 급변하지 않았고 덕분에 가을은 길었다. 그 긴 가을, 그 아름다움이 때맞춰 찾아온 지독한 고통의 주변에 머물러 오히려 덧만 내고 있었다.

 

아내는 은행창구에서 상담 중이었다. 점심시간이었는지 고객은 우리뿐이었다. 창가의 대기자 소파에 앉아 손님들이 읽을 수 있게 꽂아 놓은 잡지를 나는 뒤적거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 상담을 마친 뒤 은행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우리들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눈 앞, 단 한걸음 주의를 위해 내려다 본 대리석 계단이 흔들려보였다. 거리엔 바람이 불었고 은행나무 가지는 앙상한 뼈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당신의 한숨소리가 뒤에서 들렸어.”
아내의 말이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고? 조금 전 일이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데.”
나도 모르게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쉬었다지만 그 한숨의 깊이를 알아들은 사람의 시름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했다. 지독한 아픔이었다. 아프다는 것, 그것도 지독하게 아프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수사법임을 이제 나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헛헛한 걸음으로 낯선 지방의 공원을 걸으면서였다. 노래를 부른다는 핀잔을 들었다. 슬프면 흥얼거려지는 감성을 요즘 세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었든 싫은 일이었든 온갖 풍파 견디어낸 회한이 서러운 가락으로 풀어질 때도 있음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깊은 늪에 잠기는 느린 흐름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했다. 그 충동은 근래에 없는 일이었다. <봄날은 간다>를 1절부터 3절까지 부르고 싶었고, <이별의 삼나무 한 그루>라는 엔까(演歌)를 느리게 부르고도 싶었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바빌로프의 <아베마리아>도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울컥거리고 있었다. 그 모두 생각뿐, 노래를 부를 수도 없지만 불러서도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조금 무색해서 흥얼거림을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세먼지도 없다는 타지(他地)의 하늘은 티 하나 없이 맑고 푸르러있었다. 지독하게 서러웠지만 그 마음 또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