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순창극장’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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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순창극장’에 대한 추억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8.12.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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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억압과 검열 등 어려운 제작여건 속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냈던 첫 번째 시기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라 일컫는 1960년대였다.
탄탄한 스토리에 빠른 전개, 뛰어난 테크닉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된 오늘날의 영화와는 한참 먼 1960년대의 영화. 신성일, 김진규, 최무룡, 신영균, 김지미, 엄앵란, 고은아,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의 유명배우가 일 년에 10편 이상 출연해서 그 배우가 그 배우였고, 투박하고 감정이 오버되는 면도 많아서 너무나 아날로그적 이기도 했던 그때의 영화들.
그러나 60년대 당시에는 동네에서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몇 안 될 정도였고 특별한 취미생활도 없던 때라 국민들에게는 극장을 찾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오락이었다. 관객들은 현실이 어려울 때 영화를 통해 위안을 얻었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순창에서 최초의 극장다운 극장은 1958년 임차주 국회의원 시절 국비로 지은 공회당 건물을 임병선(필자의 선친) 씨가 임대하여 극장 허가를 받은 ‘순창극장’이었다.
당시 극장의 영화 배급은 지금의 배급 방식과 많이 달랐다. 지금은 한 편의 영화를 전국 수백 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지만 당시에는 개봉관 하나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단일 개봉관 구조였다. 당시 극장은 1관, 2관, 3관이라는 등급이 있었다. 오리지널 필름이 몇 벌 없었기 때문에 전국을 서너 개 지역으로 묶어 그 중 개봉관(1번관)에서 최초로 상영하고, 제1관에서 상영이 끝나면 조금 더 저렴한 극장(2번관)으로 내려가고 또 그 곳에서 상영이 끝나면 가장 관람료가 저렴한 3번관으로 필름이 내려갔다.
외국영화도 상영되었지만 한국 흑백영화가 많은 편이었다. 1966년을 기준으로 순창극장에서는 흑백영화는 하루(히트작의 경우는 이틀), 총천연색(컬러) 영화는 이틀, 크게 히트한 영화는 사흘을 상영했고, 재개봉 영화의 경우에는 하루 2편을 동시상영했다. 선친이 극장을 운영했던 관계로 필자는 당시 매일 영화를 관람하다시피 했다. 1966년 한 해 동안에만 100편 이상의 영화를 관람했던 것 같다.(매일 극장에 가서 십원짜리 지폐 석 장씩을 받아다가 저축하는 재미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시간에 극장에 들렀었다.)
1966년에 순창극장에서 상영됐던 영화(제작연도가 아닌 순창극장 상영시기 기준)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초우>(주연 신성일, 문희), <소령 강재구>(신성일, 고은아), <맨발로 뛰어라>(신성일, 태현실), <오인의 건달>(신성일, 고은아), <홍콩의 왼손잡이>(이예춘, 태현실), <민 검사와 여선생)(김지미, 김석훈), <살인마>(이예춘, 도금봉), <저 하늘에도 슬픔이>(신영균, 김천만) 등이 있었다. <소령 강재구>와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학생동원 영화였고, 특히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초등학교 4학년생인 이윤복의 수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일주일 넘게 상영한 순창극장 최장 상영 영화였다. 
순창극장에서는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극장 쇼, 여성국극, 요즘의 노래자랑 대회인 콩쿨대회 그리고 각종 학교의 학예발표회, 군청 등 기관과 단체의 각종 행사가 치러지기도 했다.
특히 1년에 10여 번 극장 쇼와 여성국극이 공연되기도 했는데 젊은 층은 극장 쇼에, 중노년층은 여성국극에 열광했다. 극장 쇼의 경우 유명가수나 배우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미국 팝가수들을 흉내 내며 몸을 흔들며 팝송을 부르는 가수, 이미자 류의 트로트가수, 남일해 류의 남자가수, 송춘희 류의 민요가수 등의 노래와 코미디, 만담, 비키니 차림 무희들의 캉캉춤 등 선정적인 춤이 공연되었다. 여성국극의 경우에는 65년도에 임춘앵 극단의 <해님달님>. 66년도 이군자 극단의 <설무랑의 비애>, 그 외 김진진 극단, 박미숙 극단의 공연도 있었다.
쇼단이나 국극단이 묵었던 숙소는 당시 남창여관이나 적성여관이었는데 연예인들이 숙소에서 순창극장으로 이동할 때면 그 연예인들을 보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줄을 지어 따라오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했던 하춘화, 혜은이와 이군자 극단 공연 때는 공연 막간을 이용해 당시 초등학생이던 필자가 무대에 올라 꽃다발을 건네주어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1967년 말, 순창극장 운영권이 다른 분에게 넘어갔고, 1972년 2월말 대한극장(73년 소유권 이전으로 현대극장으로 개명)을 신축해 운영하면서 두 극장의 경쟁체제가 한 동안 이어졌다. 이후 텔레비전 보급 확대와 다양한 오락거리로 인해 80년대 이후 순창의 극장들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30년 넘게 영화관이 없던 순창에 2015년 작은 영화관이 개관되었다. 그동안 군민들이 겪었을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과 불편이 얼마나 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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