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늴리리.
내가 살던 고향에 5월이 오면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가에서 보리피리를 부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때마침 종달이가 하늘 높이 올라 구름 속에서 길게 울어 댔고, 강 건너에서 누나가 불어주는 보리피리 소리와 어울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꿈속에서 사는 듯 낭만과 서정과 평화의 땅이 바로 그곳으로 행복했던 추억이 지금도 아롱져 흐르고 있다.
그렇게 낭만적인 피리 소리가 한하운 시인이게는 삶의 처절한 절규의 소리였다. 그것은 문둥병이라는 병을 얻어 전국을 방랑으로 떠돌며 살았기 때문이다. 아마 소록도를 찾아가는 전라도 어디쯤에서 길가에 핀 보리를 꺾어 피리를 불며 가노라니 내가 살던 고향 봄 언덕이 그립고, 또 꽃 청산 속 어릴 때가 그립고, 사람들이 사는 거리 인간사가 그립고, 이렇게 방랑으로 산하를 걷다보니 눈물의 언덕길이라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 이토록 삶의 절실함을 노래한 이 보리피리의 시는 한하운 시인의 대표작이며 두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만, 누구와도 말로는 할 수 없는 한에 서린 말을 보리피리를 불면서 하늘에 땅에 세상에 알렸다 할 것이다.
서린 말을 보리피리를 불면서 하늘에 땅에 세상에 알렸다 할 것이다. 마침내는 나병이 완치되고 나환자와 관련된 기관에서 일 하다 돌아가셨지만 인간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처절한 절규와 투쟁으로 천형을 이겨낸 애조 띤 가락의 노래는 오래 남아 애송될 것으로 믿는다.
*한하운(韓何雲) 1920~1975 한남 항주 출생
나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면서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음
-저서 : 보리피리, 한하운 시초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