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36)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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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36) 꽃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06.26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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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아원(兒園)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은 다음에 이어 올 열매를 위하여 피어온 극히 실용적인 의미인데, 사람들은 그 꽃들을 여러 가지 의미로 바라봅니다. 경이로운 것은 그 꽃들도 일 년 동안 견디며 추운겨울을 이기고 단 한번, 그것도 꽃 피운 날은 4~5일에 불과할 뿐인 사실입니다. 사람들 또한 70~80년을 살면서 단 한 번의 꽃 피움을 위해 살고 있다면, 그 꽃은 언제 피어올지, 아니 오시기나 할지, 삼백예순날 마냥 기다리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속으로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무화과도 있고, 몇 천 년 만에 한번 꽃 피운다는 우담바라도 있다하니, 한 번의 꽃 피움은 이렇게 간절한 절정에서만 웃는 기쁨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피운다는 그 꽃은 어쩌면 이미 피어온 꽃, 지금 당신이고 나입니다.
태평양 같은 넓은 바다 위에 떠돌던 맹구우목(盲龜遇木)에서 목숨 하나를 얻어 세상에 나온 아주 어렵게 피어온 꽃입니다. 그런데 서로 모른 채 삽니다. 아니 다투기도 하고 전쟁도 합니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했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에게 가서 꽃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로 인정해 주는 화목한 세상, 서로 불러주는 사랑의 말과 관계 맺음에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에 온 꽃이 될 수 있고 잊히지 않는 눈짓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 김춘수(1922-2004). 경남 충무 출생. 저서는 시집 <비에 젖은 달>, <꽃을 위한 서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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