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모 숙인이씨 은덕이 양씨문중 번성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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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모 숙인이씨 은덕이 양씨문중 번성비결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04.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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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씨 대종회 춘제

▲ 남원양씨 대종회원들이 지난 3일 적성면 제실에서 춘제를 올리고 있다.

남원양씨대종회(회장 양만성) 춘제가 지난 3일 적성면 농소마을 남원양씨 제실에서 열렸다.

대종회에서는 매년 4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음력 10월 3일과 4일 총 4회에 걸쳐 제를 지내오고 있다. 평소에는 선산에서 제를 지내나 비나 눈이 올 경우에는 제실에서 지낸다. 이 중 4월에 지내는 제사를 춘제라 하여 적성면 제각과 익산에서 치루고 10월에는 동계면 관전리와 남원시 대산면에서 치룬다. 제사는 시조를 기준으로 6대 종손까지 2대씩 서로 다른 곳에서 지낸다. 남원양씨대종회는 고려조 대제학공 양이시와 그의 아들 직제학공 양수생을 시조로 모시며 양수생의 처 숙인이씨도 함께 모시고 있다.

양만정(84ㆍ전주 덕진구)씨는 “이 곳에는 뼈가 없고 영혼을 모시는 단이 있는데 시조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같이 지내고 있다. 남원양씨는 숙인이씨 할머니의 은덕을 많이 봤는데 가문을 잇고자 개성에서 남원까지 내려온 분이다”고 설명했다.

춘제 진행은 전통 유교방식에 따라 이루어졌다. 남원양씨는 쌍매당ㆍ어은ㆍ돈암ㆍ진사ㆍ한림ㆍ통덕랑공파 등 6개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문중을 대표하는 사람은 예복을 갖춰 입고 직접 제사에 참여했다.

한편 이날 춘제를 지낸 후에는 양만성(78ㆍ전주 진북동) 회장은 2011년도 정기총회를 열어 사업보고와 정관개정 및 결원된 감사를 선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남원양씨 후손 약 100여명이 참석했다.

숙인이씨를 모시는 이유

일반적으로 많은 성씨 가문이 시조를 모실 때 부인까지 극진히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남원양씨 가문은 양이시의 며느리인 숙인이씨가 실질적으로 양씨 가문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이는 양이시가 대제학으로서 고려왕조(공민왕)의 총애를 받던 시절의 상황과 맞물린다. 당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고려가 멸망위기에 처하는데 이 때 양이시와 양수생은 6개월 간격으로 이들에게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 몸을 피한 숙인이씨는 임신 중이었고 아이를 낳아 시아버지 양이시의 고향인 남원으로 낙향해 외아들 양사보를 애지중지 키우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왜구의 침략으로 불가피하게 살 곳을 찾아 떠날 온 곳이 현재의 적성면 농소마을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집터를 넓히고 양사보를 키워냈다. 어릴 적 양사보는 무예에 소질이 있었으나 이씨의 질책을 받고 글공부를 해 훗날 함평현감을 지냈다. 대가 끊길 위기에 놓인 가문을 살리기 위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은 여인의 노력이 오늘날 번성한 남원양씨 문중의 모체가 된 것. 그래서 남원양씨대종회에서는 시조를 모시는 일 만큼이나 숙인이씨를 모시는 일에 대해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명성만큼 많은 설화

숙인이씨와 관련된 설화는 비단 남원양씨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유명하다. 이중 지명과 관련한 설화들은 구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우선 우리 군과 남원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비홍산을 꼽을 수 있는데 이곳은 숙인이씨가 나무기러기를 날렸던 곳이라 하여 비홍산이라 하고 이곳에 있는 산성은 비록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비홍산성이라 한다. 그리고 고개 이름은 비홍치 또는 비홍재라 한다. 비홍산성에서 띄운 세 마리의 나무기러기는 각각 적성면 농소마을과 동계면 구미리, 인계면 마흘리에 떨어졌는데 각각 결과물을 통해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양사보와 관련한 설화도 있다. 양사보는 글공부를 하기 전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즐겼는데 주변 사람들과 구악산에 올라가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양사보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마을사람들과 배불리 먹었는데 이 멧돼지 뱃속에서 무량이란 글자가 새겨진 푯말이 나왔고 이때부터 구악산을 무량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동계면 구미마을 인근에 있는 무량산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란 뜻의 무량은 이후 남원 양씨가 번성하게 된 뜻으로도 해석된다. 우리나라의 양씨 가운데 남원양(楊)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남원양씨 대종회에서 만난 사람들

▲ 양만성 (78·전주 진북동) 대종회장
“대제학과 직제학을 역임한 시조의 후손답게 명망 있는 후손을 배출해 왔다. 시조 할머니의 노력으로 가문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문중의 독특한 내력이다. 아쉽게도 그 유골이 없이 묘사로 모시고 있지만 순창의 역사중 남원양씨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양만정(84) 옥천향토문화연구소 명예회장
“숙인이씨 할머니가 남원양씨를 살렸다면 영조시대 학자였던 백수 양응수 할아버지는 대내외로 남원양씨를 알린 분이다. 지금의 풍산면 대가리에 살면서 후학들을 길러냈는데 벼슬을 고사했는데도 높은 학문 때문에 나라에서 부설공이란 직위를 수여했었다.”
 

 

 

 

▲ 양우석(13·경기 고양)
“선산을 지키고 조상을 모시는 대종회에 아빠를 따라 빠지지 않고 다녀요. 한 달 뒤 고양시장배 바둑대회 우승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기력을 더 늘리고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바둑공부 하는 게 쉽진 않지만 열심히 하고 제사에도 꾸준히 나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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