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하소연 할 곳 없어 많이 울었어요”
상태바
“시집살이 하소연 할 곳 없어 많이 울었어요”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05.18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복흥 석보마을 최고참 이주여성 박미소씨

▲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개명했다는 박미소씨(사진 가운데)가 이웃들과 함께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
진정한 한국인 되기 위해 개명…이주여성 어려움 상담 맏언니

다문화 이주여성이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당시만 해도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 땅을 밟은 사람은 그 자체로 뉴스였다.

이들의 삶은 힘겨웠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음식은 물론 문화까지 누구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모든 것을 혼자 배워나가야 했다. 누가 뭐라 한 것은 아니지만 시집살이의 힘겨움을 하소연 할 데 없어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결혼 이주여성이 늘어 지역에서도 한두 명 씩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한 마을에 8명이나 되는 다문화 이주여성이 정착했다. 이들은 출신국가는 다르지만 이주여성으로서 느끼는 어려운 점이 비슷해 힘들면 상담하여 이끌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게 됐다. 그렇게 다문화 이주여성은 마을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해갔다. 복흥면 석보마을 이야기다.

석보마을 다문화 이주여성 중 최고참은 박미소(39)씨다. 필리핀 출신인 박씨는 얼마 전 개명신청을 했다. 한국에 온지는 15년이 됐다. 이제야 개명신청을 하게 된 것은 이주여성이 행정절차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데다 개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남편인 진충성(48)씨와 사이에 4자녀를 둔 박씨는 시어머니도 모시고 있다.

박씨의 결혼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였다. 박씨는 필리핀에 있을 때만 해도 활발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말이 안통하고 문화적 차이가 커 성격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도 마찰이 생겼다.

“일이 많은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오곤 했다. 잠만 자고 나가기 일쑤니 여기가 여관이냐며 싸운 적이 있다”는 박씨는 소통하고 싶어 한글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글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지만 사투리 등 정서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말들은 아직도 난해하단다. 박씨는 “빨간색 하면 빨간색이지 ‘붉다’, ‘불그스레하다’ 등 비슷한 다른 표현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라며 웃어넘겼다.

한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박씨의 생활 또한 한결 나아졌다. 문화적 차이, 생활방식이 다른 시어머니와의 간극도 해소할 수 있었다. 십 수 년 세월을 감내하며 노력한 덕분이다.

이웃한 다문화 이주여성 또한 박씨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먼저 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석보마을 이주여성들은 고민상담은 물론 생활의 지혜를 전수하는데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박씨는 “예전에는 지역에 이주여성이 적어 국적이 달라도 서로 밥을 먹곤 했다. 요즘은 그 수가 많으니 누가 오면 그냥 왔나보다 하지만 같은 국적 출신이면 아무래도 눈이 가곤 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추천으로 결혼이주를 한 여성 역시 이제는 어엿한 석보마을의 안주인이 되었다. 육아 상담은 물론 적당한 선에서 남편 흉을 보기도 한다. 농한기에는 모여서 각 출신지별 음식을 만들어먹곤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모였다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다문화 여성들의 공통언어는 국어다.

석보마을은 요즘 농번기로 한창 바쁘다. 복분자가 잎을 틔우고 밭작물에도 생기가 도는 시기, 다문화 이주여성이라 하더라도 농사일에는 예외가 없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진충성씨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꾸준히 경비를 모은 진씨는 가족과 함께 올해 말 아내의 고향인 필리핀을 다녀올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