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 외이리 ‘오세육효정려’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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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 외이리 ‘오세육효정려’ 방치
  • 이양순 기자
  • 승인 2011.06.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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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허물어지고 기와 깨지는 등 훼손 심각

▲ 평택임씨 집안 6명의 효자 공적을 기리고 있는 유등 외이리 오세육효정려가 심하게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택 임씨 집안 5대에 걸친 6명의 효자 공적을 기리고 있는 ‘오세육효정려’가 방치되고 있다.

유등면 외이리에 있는 ‘육효정려’는 고려말 충신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인 조선시대 문종 때의 여섯 효자를 기리는 정문(旌門)이다. 수년 동안 문화재지정을 신청했으나 ‘문화적 가치나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번 탈락하면서 군이나 문화원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지 않고 있다. 현재는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 임병용(64ㆍ유등 외이)씨가 홀로 정비하며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담장이 허물어지고 기와가 깨지는 등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윤영신(74ㆍ유등 외이) 국사편찬위원은 “군내 곳곳에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많지만 정비가 시급하다”며 “문화재로 지정이 돼도 손색이 없는 열녀비와 정려 등이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또 “다른 시군들은 앞 다퉈 문화유산에 대한 작은 모티프(동기)라도 발굴해 보존하고 개발하고 있다”며 “이런 실정에서 우리 지역의 육효정려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지역주민에게는 큰 손실이다”고 아쉬워 했다.

주민 박모(54ㆍ남)씨는 “훌륭한 정신이 깃든 문화재를 발굴, 후손(학생)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우리 고장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외부 관계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군에는 전문성 있는 위원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후손 임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화재 지정을 위해 관련 서류 등을 준비했었다”며 “사료 가치가 높은 교지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또 “군은 다른 사업 등을 이유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해 왔다”며 “최근 정려에 붙어있는 목각 문양 등 일부가 훼손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려(旌閭) <명사>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 국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모두 4362개의 정려가 있다. 이 가운데 비석과 건물은 962개이다.
 

후손 임병용씨가 보관중인 '교지'와 '문화재실태조사서'.

 

 

 

 

 

 

 

 

 
우리고장 문화유산

오세육효정려기(五世六孝旌閭記)는순창임씨 시조는 순창군(淳昌君) 중연(仲沇 : 고려조 밀직부사 추성양절공신 찬성사)이다. 중연의 아들  선미(先味)는 고려말 새 왕조를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어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던 고려의 충신 72현의 선도자. 조선 정조 때 왕명으로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배향(配享)하였다.

‘오세육효정려기’의 시작 임시채(林時采)는 시조 중연으로부터는 14세손이다. 시채는 어머니의 병이 위독함에 손가락을 잘라(단지) 그 피를 먹여 소생케 했다. 또 부친의 묘소를 3년동안 시묘(묘를 지키고 돌봄)할 때 호랑이가 전후좌우로 호위했다하여 호위옹(虎衛翁)이라 불렸다.

두 번째 임양성(林養性)은 15세손.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 시채의 마음과 행실을 본받아 실천했다. 아버지가 등창으로 신음하니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낫게 했다. 조선 정조 임금 국상(國喪) 때는 집 후원에 단을 쌓고 아침저녁으로 슬피 울었던 충신이었다.

세 번째 임광수(林光洙)는 양성의 아들, 16세손이다. 어머니가 병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지만 꿩을 잡지 못했으나 효성에 감복해서인지 꿩이 품안으로 날아들어 공양하여 병을 낳게 했다고 전해진다. 또 10리 밖에서 시묘하는 아버지의 시묘 막에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며 병을 수발했다.

네 번째 임종혁(林宗赫), 다섯 번째 임종빈(林宗彬)은 광수의 아들, 17세손이다. 종혁은 집안 법도에 따라 행동하며 아버지 묘소에 시묘살이를 하다가 불행히 탈복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우 종빈이 뒤를 이어 3년 시묘를 마쳤다. 뒤에 어머니가 유명으로 ‘시묘를 하지마라’하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묘에 가서 통옥하며 3년을 마쳤다.

여섯 번째 임환(林煥)은 종빈의 아들 18세손이다.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어머니의 만류로 아버지의 시묘를 하지는 않았으나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아버지 묘를 찾아 곡했다.

한편 유등 외이마을에는 순창임씨 2세 임선미의 셋째아들 용계(用桂)의 후손들이 남원윤씨(南原尹氏)와 대구배씨(大邱裵氏) 등과 어우러져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던 곳이다.

출원 : 순창문화원 <순창의 효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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