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간 순창장 지켜온 건어물가게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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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간 순창장 지켜온 건어물가게 할머니
  • 황호숙 기자
  • 승인 2010.07.27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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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은 억지로 긁어 잡으면 안 돼 후하게 퍼 주면 후제 또 사주고 가더라고”

 

십여년전 겨울, 임실 덕치면에 사는 김용택 시인이 순창 여농학교에서 구림 통안리가 고향인 시인의 어머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 적이 있다. 강연 끝 무렵 농촌에서 한 평생을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분 한분이 모두 살아있는 박물관인데도 귀중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통째로 없어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살다보니 삶의 지혜를 배울 뿐 아니라 시의적절한 속담, 사투리로 표현되는 남도의 정서, 노동요 등이 기록으로 남겨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42년간 순창 5일장을 꾸준히 지켜온 살아있는 오일장 박물관 할머니(85세)를 만나 뵈러 건어물 시장에 갔다가 정만 푸지게 보따리 하나 가득 채워 왔다. -편집자 주-

 

 

 

- 우리 어메들 옛날 이야기하라면 살아온 세월을 영화로 찍으면 눈물 찍찍 짜는 드라마 몇 편은 될 거고, 책으론 몇 권을 내도 모자라 그 심난한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하실 수 있을까마는 일단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사진기 들여대도 주섬주섬 봉투에 챙기시며 아이들은 어떤지, 왜 장날 안 들르는지 추궁하신다).

▲ 뭣할라고 늙은이 이야기를 쓸려고 혀싸. 넘 맹키로 글자만 알아도 줄줄이 풀어냈을껴? 참말로 어찌까 잉! 우리 아들 딸들 알면 눈물부터 흐를까봐 지금꺼정 암말도 안혔는디! 내사 유등 유촌이 탯자리인데, 눈도 많이 내리던 동짓달 열나흗날쯤일껴. 그 추운날 꽃가마타고 시집 왔더니 지독하게 가난하등만. 3년 함께 살다 제급 나올때 딱 숟가락 2개 솥단지 하나갖고 나와서 절약하며 살았제. 할아버지만 밥 챙겨주고는 나는 일하는데서 밥 얻어 묵었다고 꼬르륵 소리가 나도 거짓말로 버팅겼응게. 21살에 딸 낳기 시작해서 다섯을 낳았는데 두 놈은 아파서 죽고 딸하나 아들 하나에 손주들이 이젠 8명이여. 막둥이 아들이 지금 55살인데 그놈 7살때부터 베개모장사를 시작 했응게 만 42년이나 되부렀네. 징허게도 힘든 세월 버티게 해준게 지금 이 가게 자리가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여. 참 오래됐제

 

 

- 어떻게 건어물 장사를 시작 하신 거예요. 계속 순창 오일장만 다니신거예요? 연세가 있어서 자식들이 못나가게 말리시는 걸로 아는데, 하하하 오늘도 물건 많이 들여 놓으셨는데요 계속 하실건가요.

▲ 다 큰 자식들이 고생 그만하고 그만 두라고 혀도 이렇게 움직여야 덜 아픈것 같여. 시방인게 글제 40년전에만 해도 멸치장사가 할 만 혔어. 아들딸 고등학교꺼정이라도 보내고 논마지기라도 사고 할 수 있었던것들이 이 멸치들이고 북어포고 미역줄거리들이지. 순창장, 구림장, 갈담장들마다 5일에 한번씩 가서 팔았는데 장세가 비슷비슷혀서 돈들어오느게 많았어. 장사 안가는 날엔 무조건 놉 얻어서 농사지었고 마을사람들이 일부러 어디 놀러 갈때도 장에 안가는 날로 잡아준게 고마웠제.

우리 논을 사서 선대 안주고 방에 쌀가마니 들여 놓응게 큰 아들이 글더만, 어메 울집도 흰떡 해먹을수 있는겨? 하던때가 엊그제 같은디 애들은 기억도 못할겨. 멀리 장사갔다 왔는데 둘째아들이 홍역을 앓아 겁나게 말랐는데도 엄마 오니까 좋아서 아버지도 산에서 나무 쬐끔만 해갖고 오신다고 눙치며 앵길때가 먹먹하게 생각나네. 젊은 사람들처럼 아양 떨면서 팔지는 못혀도 속이지는 안항게 아는 사람들은 날보고 양심가라고 혀. 요대로 내 맘이 안 변하면 정 안 끓어지고 사람들이 계속 찾아올 것이고, 그 사람들 안부도 묻고 맛난 것 팔고 하면서 건강이 허락하는데 까진 하고 싶어 ,

- 음, 맛있게 장사하시는 요령이랄까, 42년간 단골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면? 아님 장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 있으세요. 근데 북어포 만원어치 사가는데 말린 새우를 5000원 어치는 더 주는 것 같은데 돈은 남으시는 거예요.

 

 

 

▲42년간 순창 장날에 안 나와 있어 본적이 없제 . 별의별 사람들과 부대끼며 장사만 했는데 난 앵기는대로 팔자주의여. 단골은 억지로 긁어 잡으면 안돼. 후하게 퍼 주면 후제 또 와서 더 많이 사주고 가더라고. 포돗이 영감 할매 약값만 벌면 되지 뭐. 넘에게 좋은 일하면 내 자식들에게 후제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어. 요새는 다른 사람들이 새벽 4-5시에 나옹게 나도 딸네집에서 자고 새벽같이 나오게 되더라고. 돈 벌 욕심이라기보다는 기냥 내가 오늘 그만두더라도 물건들 남기지 않게 하고픈 마음이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내 맘부터 좋아야 혀. 어쩐지 모르고 허송세월만 한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산다는 게 뭐 있냐 싶어. 가장 행복하고 재밌었다면 내 힘으로 장사혀서 아이들 가르쳤응게 이만하면 잘살았다 싶어. 그때 당시는 오로지 이녁 힘으로만 가르쳐야 했고 큰 아들 나이 때만 해도 오룡마을에도 고등학교 가르친 사람이 없었어. 배고파도 배부를 때가 내 새끼들 배부르게 먹이고 전답 한마지기씩 사들일 때 였을껴. 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 어느날 젊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면서 들으라는듯이 “나는 물건을 사도 젊은 사람들한테 가서 살거야. 말 한자리라도 섞응게” 글더라고, 큰소리로 너희는 안 늙을 줄 아냐, 늙어봐라 라며 한마디 퍼부었는데 무지 속상하더라고. 단비엄마는 절대 어른들 앞에서 싸가지없게 이야기 하지마. 맘아픙게 잉

- 할아버지도 계속 무릎이 아프신것 같던데. 쬐까만 젊었어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거나 바람이 있으세요
 

▲ 뭣이 원하는게 있겄어. 요새 영감이 전동차를 구입했는데 자꾸 더 아프신것 같아 마음이 쓰리제. 이 나이에 원하는 것 하고 잡은게 뭐 있겄어 그냥 영감 할아범 많이 안 아프고 살다가면 되지. 그냥반이 좋으면 나도 좋고, 내가 좋으면 그냥반도 좋아서 갈 때 같이 가면 되지. 너무 오래 살아도 귀염을 못봐. 안글겄어. 내가 쬐까만 젊었다면 구림 5일장을 옛날처럼 일으키면 좋겠어. 구림장날 사용료 내는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는데 젊은 날의 고생과 추억이 고대로 있는디 말여.

 

- 지켜봉게 우리 엄니가 이것을 좋아하는데 라고 말만하면 계속 퍼주시는데. 왜그러세요.

▲ 봉투 쨈맸다가도 다시 풀어서 더 넣어줘부러. 부모한테 잘하는 것 같아 고맙고 또 고마웅게. 어느 할매가 시골에서 요것조것 다 팔아서 한 3000만원 있응게 아들딸들이 서울가서 잘 모실텡게 팔아불고 올라오라 쏙닥거리드랴. 처음엔 잘 하등만 쬐끔 지나니까 저희들끼리만 돌아다니는데. 어메한테는 온다간다 말도 안하던 것들이 세상에나 강아지새끼들한테 쓰다듬고 뽀뽀하고 어디갔다올게 보고도 잘하드랴. 어느날 저녁, 개집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기둘렸더니 치매 걸린 노인 취급을 하길래 너희가 어메보다 강아지를 더 이뻐하길래 그래봤다고 하면서 돈 내놓으라고 했더니 이미 2000은 써불고 1000만원 남았드랴. 돌려받아 다시 시골로 와서 더 편하게살아부렀댜.

어른들한테 잘하면 자기 자식한테서 복받는겨. 왜 그 이치를 모르는지 답답혀. 구불구불 풀어놓을 슬프고 가슴 애린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더라고. 아까 누가 귀한 선물로 빵을 주고 갔는데 울 손녀들 갖다줘. 할매가 보고 싶어하더라구 핵교 안갈 때 꼭 데리고 와 잉. 보고 잪구만, 바쁜사람잉게 어서어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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