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안에 ‘계급’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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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안에 ‘계급’ 있다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9.10.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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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익숙해 낡아 보이는 말이지만 삶에서 작용하는 현실이다. 요즘 사태는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계급 문제를 꺼내놓았다. 청년들은 ‘출발선은 같은가’라는 질문에 ‘불평등 대물림’을 용인해온 사회 구조 전반에 분노로 답한다. 기회가 주어지거나 배제된 순간, 기회를 잡거나 포기한 순간 작용한 요인들은 비슷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여건이 허락하면 재도전할 시간을 얻지만, 그렇지 못하면 경로를 바꿔야 한다. 
불평등 고리는 어린 시절부터 작용한다. 격차 요인은 복합적이다.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인맥 차이뿐 아니라 특목고와 일반고, 서울과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부모의 지원 수준이 다르면 신경 써주는 학교의 태도도 다르다. 스스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대학에 지원서를 내는 학생은 ‘정보의 불평등’을 뒤늦게 인식한다. 그나마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면 선생님이 알아서 써주는 건 줄 알았다”라는 순진한 생각이 ‘잘못’임을 자각하면서 대학 생활을 꿈꾼다.
대학 입학 뒤 계속 학자금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부모의 인맥과 지위는 격차를 더 넓힌다. 집안이라는 ‘뒷배’가 꿈의 크기를 바꾼다. 벽을 뚫으려면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 빈곤한 이력서에는 아르바이트 경력만 빼곡하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자신이 번다.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며 돈을 번다. 옷가게나 식당에서도 일한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스펙’을 만든다. 하루 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교환학생을 다녀올 돈을 모은다.
유학은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지원센터에 이력서를 등록한다. 지방대 출신은 취업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그 선(학벌) 위로는 못 올라가는 현실”을 깨닫는다. 배경도 인맥도 기술도 없고, 부모가 다리를 대주거나 정보를 주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음을 안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쉽게 잘리지 않고 보장된 일자리, 먹고사는 데 걱정 없을 자리’를 찾으려고 학원에 등록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만 정해놓고 공부한다. 수험생활 2~3년, 시험에서 아깝게 낙방한다. 꿈을 접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도움이 없어 슬프다. 시간 들여 돈 벌고, 그 돈을 다 쏟아부어도 안 되면 낭떠러지다. 안정된 일자리, 먹고살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삶이 모든 품을 들여도 될까 말까 할 기준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모든 걸 다 바쳤는데 ‘낙오자’ 인생을 살게 생겼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인적 네트워크는 자식들의 ‘능력’이다. ‘스펙 품앗이’는 예사다. 묵시적이고 포괄적인 차별대우가 만연하다. 교사들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량화된 시험’ 뿐이다. 그러나 불안하다. 한계가 있다는 걸 느낀다.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집단에 속한 적이 없다.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역량은 여기까지라고 체념한다. 그러나 사회에 불만을 품지는 않는다. 자신만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출발선은 같은가?’ 돌아온 답은, 좋은 대학과 스펙 어느 하나도 한두 푼 아니다. 정말 여건이 어려운 친구들은 나 정도의 선택지도 갖지 못한다. 한국 사회 불평등은 자연법칙 같은 것, 끝내 오르지 못할 위치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계급이 있다. 개인 삶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국가가 민생을 책임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민생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힘겹게 노력해야 겨우 평균에 다다를 수 있는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가 있다. 부모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지고, 불평등 격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벌 사회 딱지가 억울하다. 사회가 ‘실패한 삶’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기준을 맞추는 삶이 너무 힘들지만, 다음 세대들은 사회 기준에 못 맞춰도 욕먹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원으로 쌓은 스펙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청년에게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부모의 자산ㆍ소득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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