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42) 장독대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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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42) 장독대 항아리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10.17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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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아원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장독대 항아리


뒷 뜰 장독대 위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둥근 항아리들

옛날,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있는 그 모습들 아니더냐

그러하니, 저 항아리들
내 발자국소리 알아듣는 귀가 있고
모진 한 세상 열고 보시던
어머니의 눈이 있고
강 건너 오시며 부르시던
아버지의 육자배기의 소리가 있고
둥실~달 떠오를 때 간절히 비시는
할머니의 두 손 비빔이 있다

산다는 것은 별것이 아니더라
언젠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때가 되면
나는 여기 장독대로 돌아와
항아리가 되리라
내 안에 쌓인 덜 삭은것들
모두 폭 삭혀 고추장, 된장처럼
인생살이 맛내는 일로 살다가리라

그때마다 찾아오는
맨드래미 채송화랑 같이
잠자리처럼 빙빙 돌며 놀다가
지난 가을처럼 조용 조용히
떠나갈 일이로다.

 

그렇다, 온 가족이 모여 살 때는 모르고 살던 장독대 항아리들이,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떠돌다가 어느 때 그 집에 가서 보면, 그때 같이 살던 식구들은 모두 떠나가고 없어도 장독대에 항아리들이 그때 살던 가족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그렇게 되어 만나기까지 긴 세월이 삭아져 갔고, 몸도 나이도 모두 삭아서 사라졌지만, 어쩐지 그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면 모진 한 겨울을 이겨낸 흑장미 같은 검붉은 고추장이 담겨져 있을 것 같고, 무서리 발속에 노랗게 핀 국화 같은 빛깔 된장이 더 잘 삭아지고 있을 것만 같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시간과 세월 속에 삭는다. 그렇게 삭아져서 물이 되거나 바람이 되어 사라지고 마는데 그 장독대 항아리 속에는 삭아지면서 더 깊은 맛을 내는 고추장, 된장, 간장이 담겨져 있다. 우리의 삶도 어찌 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그 묘술의 순간순간에는 세상과 소통시키는 숨 쉬고 있는 항아리의 역할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맛낸 고추장 된장이 순창을 떠나 그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도 그 맛이 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바람인가? 물인가? 사람인가? 그것은 오직 순창에서 만들어져야만 그 맛이 된다는 것이다. 그 장류문화와 전통을 자랑으로 삼고 숨 쉬는 곳이 순창이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곳곳에서 그 고을을 자랑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먹거리 장류를 머리에 이고 자랑하는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산다는 것은 별것이 아니더라 / 언젠가 왔던길 돌아갈때가 되면 / 나는 여기 장독대로 돌아와 항아리가 되리가/ 내안에 쌓인 덜 삭은 것들 / 모두 폭삭혀 고추장 된장처럼 / 인생살이 맛내는 일로 살다가리라’ 누가 오래된 포도주를 나이 먹어 늙었다 하는가. 순창에 살고 있는 고추장은 오래될수록 더 젊어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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