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산거 100살까지 살아봐야지
금과에 98세, 건강한 어르신이 계신다는 한 독자의 연락을 받고, 오판동(98ㆍ금과 계전) 어르신을 찾아갔다.
계전마을에 사는 오판동 씨는 은행을 주워 모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귀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사했다. 오 씨는 “내가 뭐가 있다고 부끄럽네…” 손 닦고 얼굴을 씻은 할아버지는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전남에서 태어났어. 지금은 배부르게 먹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진짜 찢어지게 가난했지. 특히 우리 집은 더더욱 가난했어. 논 한 마지기 없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나무를 베다가 간신히 목숨 줄만 연명했지. 그 당시에는 대부분 중매로 결혼했어. 우리 매형이 한 처녀를 보고 나랑 이어주려고 노력했지. 근데 각시 쪽 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집을 보고 가더니, ‘저 집에 딸아이를 보내면 굶어 죽일 거 같다’며 중매를 취소하려고 했지. 그래도 매형의 노력 덕에 장가를 가게 되었어. 첫째는 아들을 낳았어. 근데 너무 가난해서 큰 아들이 남의 집에서 한 10년을 살았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 그렇게 고생한 큰아들 덕도 보고, 열심히 살아서 논도 열서너 마지기 가지고 있다가 3년 전에 다 청산하고 자식들에게 나눠줬어”라고 말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몸소 겪었는데 기억나는 사건을 묻자 그는 “6ㆍ25전쟁, 진짜 살벌했지. 나는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날라주고 탄약 같은 것도 운반했지. 포탄 소리나 총 소리를 들릴 때마다 진짜 오줌을 지릴 뻔했지.”
오 씨는 장수 비결은 ‘밥’이라고 한다. 그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하루에 한 대 피울까 말까 하지만 오래 산 이유는 밥 때문인 거 같아. 지금도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먹는 거 같아”라고 말했다.
오 씨의 부인은 몇 년 전 89세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 씨는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살까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잘 죽을까 이 생각뿐이야. 우리 각시는 아픈데 하나 없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갔더라고. 오래 산다고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걸 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는 “98년을 살았다고 이렇게 신문기자도 오고, 저번에는 면사무소에서 상도 주더라. 기왕 이렇게 오래 산거 100살까지는 살아보려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오판동 할아버지와 100살 때 다시 와서 인터뷰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