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18)/ 송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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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18)/ 송년
  • 선산곡
  • 승인 2019.12.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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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다. 어서 지나갔으면 하고 되돌아보는 한 해의 기억이 대부분 쓰디쓰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잦았던 태풍, 비바람도 많이 불었다. 기후변화에 의한 태풍이 역대 최고라고 했으니 말 그대로 올해는 태풍의 해였다. 신년에 황금돼지해라더니 몸에 금붙이 하나 지니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 덕담도 남 얘기였다. 내 생애에 기해년은 다시없겠지만 황금돼지해가 가고 있다. 가라. 정말 어서 갔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는 한 해의 끝자락, 정확히 말하자면 태풍의 해가 가라는 말이다.
기상(氣象)으로 말하는 태풍이 아니라 삶의 태풍이다. 사랑이니 슬픔이니 오기니 희망이니 그 모든 것들이 까라지고 멀어지고 꺼져버린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것이 지나버리고 남은 객체 하나,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대해 묻지 마라 소리친다면 그것이 오기라고만 볼 수 없다. 유난히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주었으면 하는 보통사람들의 주문일 뿐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추억의 노래, 라애심 송민도 배호 최양숙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원곡은 상송 <Tume Sais Pas Aimer 당신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위주로 살면서 남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않는다. 똑같은 감정의 폭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올해만큼 그 비중이 커본 적은 없다. 내 이웃은 한가해서 좋겠다.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것, 당신이 웃어도 웃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발견이 아니다. 태풍에 휘말린 내 삶의 단말마를 들은 사람은 없다. 말 그대로 남의 속도 모르고. 내 이 상황을 이처럼 절묘하게 가져다 쓸 수 있는 말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속옷을 거꾸로 입는다. 누가 볼일도 없다는 생각이 앞서있지만 이유가 있다. 민감한 피부 때문에 재봉선이 자극 받을 때를 대비해서 입다보니 버릇이 되었다. 만약 가렵다면 남 앞에서 긁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입을 수도 없다. 결론은 옷을 뒤집어 입는 방법이었다. 지금 닥친 고통을 지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옷을 뒤집어 입는 것처럼 삶의 방식을 뒤집어보면 편할 수 있을까.

겉옷을 뒤집어 입을 수 없지만 남이 보지 않을 속옷을 뒤집어 입으면서 가끔 생각한다. 뒤집히는 것은 예사다. 인생이 되었건 삶의 방향이 되었건 그 흐름은 그냥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1년 내내 태풍이 불 것인가. 지나면 언젠가 평온이 올 것이고 내 속 몰라주면 언젠가 알아주는 사람도 있으리니.

한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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