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현대사(15) 1971년② 은희ㆍ양희은ㆍ이용복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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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현대사(15) 1971년② 은희ㆍ양희은ㆍ이용복 등장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2.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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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15)- 1971년②
▲은희 <사랑해>ㆍ<꽃반지 끼고> 앨범.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앨범. 이용복 <1943년 3월 4일생> 앨범.

대중음악사적으로는 포크와 록 계열의 일거수일투족이 집중 조명을 받는 1971년이지만, 이 시대를 산 대중이 직접 느낀 감성은 달랐다. 1974년 ‘포크송 열풍’이 휘몰아치기 전까지는 아직은 트로트 전성기인 남진ㆍ나훈아의 시대이자 김추자의 시대였다. 엘피(LP) 레코드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 펜들이 체감하는 ‘히트 가수’는 남진, 나훈아, 배호, 김추자, 정훈희, 패티김, 이미자, 조미미, 하춘화 등의 가수들이었다.

<거짓말이야>, 김추자

김추자는 <거짓말이야>로 다시 한 번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로서는 선뜻 꺼내기 힘든 ‘거짓말’이라는 파격적인 가사와 선정적인 춤동작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짓말이야>라는 제목 자체가 유신정권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국예술문화위원회는 1975년 ‘불신풍조 조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해, 이 노래를 수 년 동안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다. “거짓말”의 ‘거’음이 ‘고’로 들리는 김추자 특유의 악센트와 카멜레온 같은 목소리가 지금 들어봐도 새롭다.
김추자는 노래 외적으로도 이 해 하반기 뉴스의 중심인물이었다. 12월 9일 리사이틀 개최를 대대적으로 알리며 준비했으나 대형사건이 터졌다.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둔 12월 5일 전 매니저로부터 얼굴 등을 흉기로 폭행당해 입원한 것. 김추자는 그럼에도 강행소식을 알렸고, 결국 얼굴과 팔에 붕대와 깁스를 한 채 시민회관 리사이틀 무대에 섰다. 노래는 육성 대신 음반을 통한 히트곡 릴레이로 대신했다. 

<사랑해>ㆍ<꽃반지 끼고>, 은희

1970년 3월, 서울예고를 졸업한 제주도 출신 은희는 서울 ‘살롱’가에서 무명가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새롭게 결성된 이필원, 박인희로 구성된 혼성듀엣 뚜와에무와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에 자극 받은 세기음악학원 기타 강사 출신 가수 한민은 혼성듀엣 결성을 위해 여성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통기타 가수 은희는 세기음악학원 오르간 강사이자 작곡가인 김학송의 소개로 한민을 만났다. 맑고 청아한 고음으로 노래하는 은희의 목소리에 반한 한민은 이탈리아어로 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의 ‘라나에로스포’란 이름으로 혼성듀엣을 결성했다. 대학가에 흘러 다니던, 주인이 분명치 않던 <사랑해>를 타이틀곡으로 1970년 8월부터 화음연습을 하며 녹음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1971년 1월, 첫 음반 <사랑해>가 발표되자마자 그녀는 “한민과는 성격이 맞지 않다”며 돌연 솔로가수로 독립해 버렸다. 그녀는 팀을 탈퇴해 미8군 무대와 청개구리 홀에서 미니 리사이틀을 벌이며 솔로가수로 활동했다. 음반 발표가 되고 몇 달이 지나자 <사랑해>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해>의 애절한 노랫말이 중앙대생 오경운이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며 지은 곡이라는 애틋한 사연과 더불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은희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던 황우루에게 스카웃 되어 1971년 3월 첫 독집음반 <꽃반지 끼고>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변혁 편곡, 은희 작사로 알려진 이 노래는 사실 60년대말 마닐라 아시아 잼보리 대회에 일본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한 재일교포가 작곡한 곡이었다.
은희(본명 김은희) 만큼 데뷔하자마자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1세대 포크 여가수는 없었다. 70년대 초반 트로트 가수들을 제치고 가요차트의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통기타 가수는 은희가 유일했다. 1974년 은퇴할 때까지 박인희, 양희은, 이연실도 은희의 인기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높은 인기만큼이나 당돌하고 튀는 행동으로도 유명했던 그녀는 대중의 관심을 몰고 다녔던 뉴스메이커이기도 했다. “트로트 가수도 가수냐”라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일은 유명하다. 대표곡 <사랑해>ㆍ<꽃반지 끼고>ㆍ<꿈길> 등은 지금도 애창되고 있다.

양희은과 <아침 이슬>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71년, 서울대 미대 재학생 김민기가 쓴 <아침 이슬>이 <김민기 1집>과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에 수록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 이슬>은 같은 음반에 실린 <세노야>와 함께 무명의 대학1년생 양희은을 가수의 반열에 세워준 대표곡이 되었다. 양희은은 <아침 이슬>이래 김민기가 만든 <금관의 예수>, <상록수>, <작은 연못>,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을 부르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사랑과 이별 타령으로 지새우는 기존의 대중가요와 전혀 다른 문법의 이들 노래는 ‘김민기 표’가 아닌 ‘양희은 표’로 대중에 가슴에 심어졌다. 적어도 김민기 노래를 대중이 따라 부르는 ‘유행가’로 만들어 준 것은 가수 양희은이었던 것이다.
<아침 이슬>은 1973년 정부가 선정한 건전가요가 되었다가 이태 후에는 금지곡 목록에 오르게 된다. 일반인들이야 <아침 이슬>을 유행가의 하나로 즐겼을 터이지만, 때는 1970년대였다. 건전가요에서 금지곡으로의 급전직하는 시대상황 말고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운동권 집회와 시위 등에서 대중의 사랑을 이어온 <아침 이슬>이 해금된 것은 1987년 ‘6.29선언’ 이후였다.
빼어난 음감과 출중한 가창력으로 한국 포크음악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양희은. 70년대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ㆍ<세노야>ㆍ<아름다운 것들>(번안곡)ㆍ<내 님의 사랑은>ㆍ<들길 따라서>ㆍ<네 꿈을 펼쳐라>, 80년대에는 <하얀 목련>과 <한계령>을 발표했다. 90년대 이후에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ㆍ<내 나이 마흔 살에는> 등을 발표하며 가수와 방송인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용복, <1943년 3월 4일생>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외국에는 호세 펠리치아노,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 등 걸출한 시각장애인가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시각 장애인’으로 개선되었지만 당시에 통용된 ‘맹인’이라는 호칭처럼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1960년대까지 대중가요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갖은 고생으로 뒷바라지를 하다 돌아가신 애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와 달리 이용복이 부른 <1943년 4월 3일생>은 ‘못 다한 효도에 대한 한 맺힌 노래’에서 탈피한 노래다. 노래 가사 중 반복되는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부분이 8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용복의 운명을 노래한 것 같아 팬들의 공감을 샀다. 이 곡은 1971년 이탈리아 산레모가요제 3위 입상곡 <4 Marzo 1943>의 번안곡이다.
<1943년 4월 3일생>은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인기가수로 성장한 이용복의 삶과 연관되어 인기를 얻었다. 이에 김묵 감독은 그 노래 가사를 토대로 이용복의 삶을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란 영화로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이용복은 이후 <그 얼굴에 햇살을>ㆍ<마지막 편지>ㆍ<달맞이꽃>ㆍ<사랑의 모닥불>ㆍ<잊으라면 잊겠어요>ㆍ<어린 시절>(번안곡)을 발표하며 70년대 대표적인 인기가수로 발돋음했다. 기타리스트로서도 재능이 있어서 양희은의 데뷔앨범 《아침 이슬》에서 12줄 기타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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