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20)/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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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20)/ 오늘
  • 선산곡
  • 승인 2020.01.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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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잠을 설쳤다. 간밤이었다지만 날은 오늘. 늦게까지 책을 읽은 탓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정신이 또랑또랑했다.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커피를 많이 마신 게 그 이유였다. 둥둥 뜨는 의식, 잠을 잔 것 같지도 않다.
“일어나소.”
“응.”
“피곤해?”
“응.”
“회사 일이 그렇구나.”
“응.”
“춥다니 옷 잘 입소.”
“응.”
날마다 아침 7시. 시세 말로 콜을 해주는 나와 아들의 대화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아들은 응 네 번이면 그만이다. 중간에 묻는 말이 달라도 무조건 응. 그 짧은 대답 하나다. 중간에 기지개를 켜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놓이는 하루.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평소와 달리 가는 전화 신호가 서너 번을 벗어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오늘도 그랬다.

창을 여니 하얀 티끌이 날린다. 올겨울 들어 처음 보는 결정체. 그것도 단 몇 초 본 것 같았으니 착각이었을까, 이제 눈 없는 겨울이 좋다. 얼마 전 사흘을 계속 내리는 겨울비가 우울하기 짝없게 했지만 그래도 눈보다는 낫다는 심정이었다. 눈이 내리던 그 어느 날 몸서리치도록 아팠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와이퍼가 안개 때문에 서린 물기를 지우고 있다. 정기자동차검사를 하는 날. 대기실에 선 내 모습이 유리창에 비친다. 검은 모자에 검은 목도리, 위아래 모두 검은 옷차림이었다. 속옷도 그렇지, 혼자 웃었다.
차는 주차장에 모셔놓고 올 들어 첫 외출을 했다. 친구는 허리통증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에 못지않은 통증을 지닌 나였으니 함께 나누는 대화는 신산(辛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평소 마다하던 달콤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양촌리라던가 순자라던가. 돌아오는 길, 오후 햇살이 들고 있었다. 차창을 보며 가물가물 어떤 시 한 구절을 생각했다. 수 십 년을 내 기억에서 맴돌았던 시. 황금찬 아니면 김춘수의 시였다는 기억뿐이었다.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서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라는 문장을 쳤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방법을 바꾸어 시인의 이름과 함께 같은 문장을 쳤다. 아, 김춘수의 시 <부재(不在)>. 시집 ≪늪≫, 1950년 판이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차운 한겨울에도 /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歲月)은 흘러만 가고 / 꿈결같이 사람들은 / 살다 죽었다

직장에 있을 때 현대시 120편의 시화(詩畵)를 손수 만들 때도 찾을 수 없었던 시였다. 이 시는 왜 내 가슴에 살아있었을까. 남아있는 것들이 별로 없는, 지워가는 인연을 쫓는 내게 이 시는 과연 무엇을 일러주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며 물을 마신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단다. 꿈결같이 살려고 물을 마신다.
오늘, 오늘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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