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우리역사(7) 고구려ㆍ백제 건국 주역 ‘소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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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역사(7) 고구려ㆍ백제 건국 주역 ‘소서노’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2.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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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유례없는 여성 영웅,

남성 중심의 수천 년 인류 역사에서 나라를 두 개나 만든 최고의 여걸이 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사람이자, 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왕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여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조선상고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고구려 건국의 주역

소서노(召西奴)는 졸본부여의 5부족 가운데 하나인 계루부 족장 연타발(延陀勃)의 딸로 태어났다. 북부여 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결혼해 비류와 온조를 낳았지만, 남편 우태가 일찍 세상을 뜨자 졸본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남편에게 지역적 기반과 넉넉한 유산을 상속받아 당당한 삶을 살고 있던 소서노에게 운명적인 남자가 나타났다. 훗날 고구려의 시조가 된 주몽(추모왕)이다. 
동부여 왕자들에게 핍박받아 졸본부여로 남하한 주몽은 소서노의 도움으로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웠고, 소서노는 고구려의 첫 번째 왕비가 되었다. 지략과 무술을 겸비한 당시 22세의 주몽은 8세 연상이었던 소서노와 결혼하면서 연타발ㆍ소서노 집안의 재력으로 군사력을 강화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으며, 송양왕의 비류국까지 속국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소서노는 토착 세력의 분열을 잠재우는 등 주몽에게 힘이 집결되도록 많은 역할을 했다.

두 아들을 이끌고 백제를 세우다

하지만 소서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주몽이 왕위에 오른 지 19년 되던 해, 동부여에 있던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예씨가 원후(元后)가 되고 소서노는 소후(小后), 곧 제2부인으로 강등되었다. 더구나 유리가 태자가 되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조선상고사》를 보면, 소서노와 두 아들의 좌절감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고구려 건국의 공이 거의 우리 어머니(소서노)에게 있는데, 이제 어머니는 왕후 자리를 빼앗기고 우리 형제는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되었다. 대왕(주몽)이 계신 때도 이러하니, 하물며 대왕께서 돌아가신 뒤에 유리가 왕위를 이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차라리 대왕이 살아 계신 때에 미리 어머니를 모시고 딴 곳으로 가서 딴살림을 차리는 것이 옳겠다”며 그 뜻을 소서노에게 고했다. 
소서노는 추모왕에게 청해 많은 금ㆍ은ㆍ주보(珠寶)를 배분받고, 자신과 친정집의 재산을 모두 바쳐서 이룩한 고구려를 떠난다. 그렇게 쓰라린 가슴을 안고 고구려를 떠난 소서노와 비류ㆍ온조는 기원전 19년 오간ㆍ마려 등 열 명의 심복과 그 일족, 자신의 부족인 계루부의 수많은 백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 낙랑국을 지나 마한으로 들어가 백제를 건국한다. 

소서노의 죽음과 의문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소서노의 죽음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2월, 늙은 할미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죽었다. 나이 61세였다.” 
역사학자들은 “늙은 할멈이 남자로 변했다”를 ‘늙은 할멈=왕의 어머니=소서노’로, ‘남자로 변했다=남자의 영역(권력)을 차지했다’로 해석하고, 이것이 소서노가 실권을 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 “호랑이 다섯 마리가 성안으로 들어왔다”를 정변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소서노가 온조 측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백제는 소서노와 비류 중심으로 건국되었으나, 온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가면서 시조 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백제의 진짜 시조는 온조가 아니라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였다고 말했다. 시조인 소서노가 죽은 뒤에 온조가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에서 백제 건국 13년 5월 이전의 사건은 ‘초대 소서노 여왕’ 재위기 동안의 사건이고, 그 이후 사건은 ‘제2대 온조왕’ 재위기 동안의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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