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구지학/ 끼리끼리 모여 나쁜 짓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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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지학/ 끼리끼리 모여 나쁜 짓만 하니…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1.07.21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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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한 일 丘 언덕 구 之갈 지 狢 오소리 학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3

왜 하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고교 시절 공부를 좀 잘 하는 ‘범생’ 인지라 선생님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편애를 받았는데, 이것을 공평하지 못하다고 여긴 반 아이 다섯 명이 나를 뒷산으로 끌고 올라가 ‘공부 좀 한다는 죄’로 몰매를 주었던 기억 말이다.

아내가 그런 것을 지금도 기억하면 어떡하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당시 몰매를 주던 얼굴 하나하나가 오늘 다시 기억이 나는 것을…

반고(班固)가 쓴《漢書楊 傳(한서양운전)》에 나오는 말이다. 古與今如一丘之  (고여금여일구지학) : 예전이나 지금도 한 언덕에 살고 있는 담비와 같구나.

한(漢, BC206-229)나라 초기 양운은 관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교육을 잘 받아왔다. 하지만 성년이 되었어도 고지식하고 사교성도 부족하여 요직에는 나가지 못하고 하급직에 머물렀다.

당시 조정에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허다하여 돈 있는 사람들이 청탁을 일삼고 뇌물을 주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돈이 없는 사람은 한직으로, 뇌물을 바치면 요직에 나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때에 마침 양운이 중산랑(中山郞)이라는 중요관직을 맡아 소신껏 뇌물악습을 솔선수범하여 척척 철폐하여 나가니 왕과 만조백관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어려서부터 공명심을 갖고 있는데다가 또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다보니 그만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또 뭘 좀 잘해 보려는 욕심에 융통성을 거의 보이지 않고 고지식하게 일을 처리하니 권세가 많은 귀족과 고관들의 청탁을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는태도를 보였다. 결국 그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고관과 귀족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럴 즈음 조정회의 전에 흉노족(匈奴族) 군주 선우(單于)가 암살되었다는 사실을 들은 양운이 마음속으로 느꼈던 바를 큰소리로 한 마디 하였다.

“흉노의 신하들이 선우를 위해 치국양책(治國良策)을 바쳤건만 받아들이지 않더니 결국 자기목숨만 날렸구나. 진(秦)나라 왕들이 소인배들의 말만 귀담아 듣고 충신과 용맹스런 장군을 다 죽이더니 결국에는 망국의 길로 갔지 않았느냐. 옛적부터 보면 군왕은 그저 소인배들의 말 듣기를 좋아하는데 조그마한 산에 야생하고 있는 담비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양운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일부 왕족과 신하들이 이를 트집 잡아 황제에게 고자질하여 처벌을 재촉하므로 양운은 면직되고 말았다.

이 성어는 ‘한 언덕에 사는 담비, 같은 종류는 차이가 없고 모두가 똑 같이 나쁜 놈’ 으로 동류 간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비유하고, 또 부정적인 사물을 형용하여 하찮게 여기며 비웃고 조롱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게 되었다. 

유사한 성어로 ‘狼狽爲奸(낭패위간, lang bèi wèi jian)’ 이 있다.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하다’ 는 뜻을 갖고 있다. 낭(狼)은 패(狽)와 같은 종류의 이리이다. 낭은 앞다리가 매우 짧아서 패의 몸 위에 엎드려 있어야만 비로소 행동할 수 있으므로 늘 같이 붙어 다니면서 약한 동물들을 해쳤다. 나쁜 놈들이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꾸미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얼마 전 자기 딸의 특별채용을 위해 인사규정을 바꿨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도중하차한 모 장관! 결국 수하들과 낭패위간한 자들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이조 오백년 역사에도 비일비재한 일인데… 하지만 오늘 날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에 앞장서야 할 엘리트라는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나!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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