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인물(30) 국회의원 - 김정두ㆍ임차주ㆍ홍영기ㆍ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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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인물(30) 국회의원 - 김정두ㆍ임차주ㆍ홍영기ㆍ설인수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4.0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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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거는 1948년 5월 10일에 시행된 제1대 선거 이후 여러 번 제도가 변경되며 실시되었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부터 순창 출신으로 순창군 지역구(소선거제)와 순창군을 포함한 선거구(중선거제)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제헌국회의원 노일환을 비롯해 제2대 김정두, 3대ㆍ4대 임차주, 5ㆍ13ㆍ14대 홍영기, 제10대 설인수 국회의원이 있다. 
20대 총선(2016년)부터는 순창ㆍ남원ㆍ임실에서 1명을 선출하고 있고, 현역 의원은 남원 출신 이용호 의원이다. 순창 출신으로는 정동영(전주병ㆍ구림 출신), 진선미(강동갑ㆍ순창읍 출신), 이학영(경기 군포ㆍ풍산 출신) 의원이 있다.

▲김정두
국회의원
▲임차주
국회의원
▲홍영기
국회의원

 

▲설인수
국회의원

김정두, 동계 출신 무소속 당선 자유당 입당

김정두(金正枓ㆍ1913~?) 제2대 국회의원은 1913년 동계면 유산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중학교를 3학년 때 중퇴했고, 해방 후 대한청년단 순창군단장을 역임했다. 1950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해 1951년 12월 자유당 선전부 차장을 역임했다. 
1951년 국회 7차 본회의에서 하곡 수집과 비료 수입 문제에 대해 임문환 농림부 장관에게 비료 대책과 작년 추곡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이유 등에 대해 질문했다. 1952년에는 대정부질문에서 《일민보》라는 간행물이 각 동과 군ㆍ면에 할당 강매되고 있어 가뜩이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 힘들다고 질타했다.

임차주, 팔덕저수지ㆍ순창여중 설립에 기여한 3선 의원

임차주(林次周ㆍ1918~1996)는 제3대와 4대 국회의원에 연속 당선되고, 6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의원을 지낸 3선 의원이다. 1918년 8월 5일 순창읍에서 태어났다. 순창공립보통학교(현재 순창초)를 졸업하고 충청북도 교원양성소를 수료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7세 되던 해에 해방을 맞이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ㆍ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청년운동에 종사하다가 자유당 군당 위원장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정두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3대 총선에 이어 제4대 총선(1958. 5. 2)에서 당선된 순창 첫 재선 국회의원이다. 제6대(1963. 12. 17.) 선거에서 민정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7대(1967. 6. 8.) 총선에 신민당 공천에 떨어지고 전북 제6 임실군ㆍ순창군 선거구에 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임차주는 제3대 총선거에 입후보하며 직업란에 농업인이라 적을 만큼 농업과 농민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1956년에는 농업은행 발기인으로 선출되었고, 1958년 7월 22일 《경향신문》에 <쌀>이라는 칼럼을 써서 쌀 분배에 대한 생각을 논하기도 했으며, 1959년에는 농업금융제도 시찰단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가장 큰 업적은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 입구에 축조한 팔덕저수지(강천호) 건설이라 할 수 있다. 사업 기간은 1952년 1월 1일부터 1958년 1월 1일까지 7년이 걸렸다. 1952년 착공했지만, 사업을 주도하고 마무리한 이는 임차주였다. 팔덕저수지는 팔덕과 금과면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지만, 홍수 피해 예방과 소중한 관광자원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1994년과 2004∼2005년에 걸쳐 두 차례 보수공사가 이루어짐).
3대 국회의원 때인 1955년, 순창중학교 분교였던 순창여자중학교가 3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는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1978년 재경순창군민향우회장을 맡아 순창군민의 애향심 고취에 몰두했고, 1979년 순창군민의장을 받았다. 1996년 9월 18일 오후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아산(중앙)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동계면 선영에 있다.

홍영기, 순창ㆍ서울서 5선ㆍ국회부의장 지내

홍영기(洪英基ㆍ1918~1999)는 제5ㆍ6ㆍ8ㆍ13ㆍ14대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법조인이다. 1918년 복흥면 어은리에서 태어났다. 고창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3년 일본 도호쿠대학(동북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8년 육군 법무관 중위로 임관했으며, 1949년 김구 암살 사건 때는 검찰관으로서 살해범 안두희에게 총살형을 구형했다. 1950년 육군본부 법무감실 법무차감(중령)을 역임했고, 1952년 군법무관 전형시험에 합격해 육군본부 병무차감을 역임했다. 1954년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하고 재야법조인으로 활동했다. 순창에서,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자유당 임차주 후보에게 밀려 연속해서 낙선했다. 
4ㆍ19 혁명 이후 1960년 7월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입후보해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金炳魯)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3공화국 때인 1965년 제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서울 서대문 을구)에서 민중당 공천으로 당선되었고, 1971년 제8대 총선(성동 을구)에서는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제5공화국 때인 제11,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정치 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부의장이 되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에 입당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을 도왔지만,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임실ㆍ순창)에 김대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 공천으로 입후보,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임실ㆍ순창)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입후보, 최고령으로 당선되었다. 민주당 당무위원ㆍ민주당 상임고문을 지냈고, 제14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9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묘는 대전시 유성구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있다.

설인수, 전북교육감 지낸 교육자ㆍ국회의원

설인수(薛仁洙ㆍ1926~1985)는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순창, 호는 익당(益堂)이다.  1926년 금과면 동전리에서 한학자인 동계(銅溪) 설진모(薛鎭模)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정읍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1952년 26세 때, 제2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부안군수ㆍ문교부 행정과장ㆍ전라북도 문교사회국장ㆍ국립중앙도서관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8년 동안 전라북도 제3ㆍ4대 교육감을 연임했다. 교육감 재직 당시 ‘밝은 풍토ㆍ알찬 교육’을 이루고자 정성을 다했고, 낙후된 지방교육 개혁을 위해 선봉에 섰다. 특히 한국교육의 장기발전을 위해 교육세 신설을 주창해 입법화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순창ㆍ임실ㆍ남원 지역구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입후보했다. 임차주 의원 이후 20년 넘게 순창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군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돼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약하면서 전문적인 식견과 경륜을 발휘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정치 활동 규제에 묶이자 정계를 떠났다. 그 뒤 1985년 군산동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재직하다 그해 5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 서릉 공원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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