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양상화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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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양상화 선생 별세
  • 림재호 기자
  • 승인 2020.04.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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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ㆍ충절의 고장 ‘순창’ 재조명한 향토사학자
풍수지리가, 언론 기고ㆍ전주대 평생교육원 강의

향토사학자, 풍수지리가인 서강(瑞崗) 양상화(楊相化) 선생이 지난 14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세상만사는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은 바쁘기만 하구나’(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ㆍ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라는 김삿갓의 시구(詩句)를 자주 인용하며 자연과 운명에 순응하며 살다 떠나길 바랐던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향토사학자, 풍수지리가로 활동했던 서강 양상화 선생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토사학자, 풍수지리가로 활동했던 서강 양상화 선생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가계와 어린 시절

고인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인계면 도룡리 정산마을에서 아버지 양준영과 어머니 박옥순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양준영은 처조부 제오당(齊梧堂) 박봉래(朴鳳來) 문하에서 수학한 한학자로 주역에 통달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진우(申鎭雨)ㆍ한기호(韓起鎬) 등과 함께 신간회 순창청년단에서 활동한 지사였다. 
고인의 어린 시절 꿈은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몸이 약해 객지 생활이 힘들 것 같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순창농림고(현재 순창중ㆍ제일고)에 다녔다. 몸이 튼튼하지 못했던 선생은 그래서 한국전쟁(6ㆍ25)이 발발했을 때 학도병으로 참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ㆍ4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진주사범학교에 머무르다가 제주도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으나 퇴소 조치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하굣길에 항상 동행하며 책을 좋아했던 제필순ㆍ최재섭ㆍ임자원ㆍ정규옥 친구들이 한국전쟁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청년기의 방황

1950년 국가고시인 준교사시험에 합격해 열아홉에 풍산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해 이듬해는 구림국민학교에 재직하다 뜻한 바 있어 교직을 그만두었다. 그후 천주교ㆍ성결교ㆍ감리교에 나가 성경 공부를 했고, 불교에 귀의하려고도 했다. 방방곡곡의 명산대천을 답습했다. 40년 가까이 동양철학(풍수지리ㆍ역학ㆍ오운육기학ㆍ중국소림사기공비법)에 심취했다. 우주 변화 원리학의 대가인 한동석 박사와 오운육기학을 연구한 백남철 박사로부터 학습하고, 중국 이남석 박사로부터 중국소림사기공비법을 사사받았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창향지(지명고)’ 편찬

1990년, 한용수 옥천향토문화연구소 회장의 강력한 권유와 고향의 문화 연구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옥천향토문화연구소 상임이사를 맡아 순창의 지리와 전설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96년 여름, “잊혀져가는 향토사를 정리하자”고 제안하며 정년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지역에서 젊은 날을 보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향지사’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접전지였던 까닭에 순창 문화유산 대부분은 훼손됐고 복원되지도,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한 실정에서 첫 사업으로 지역의 옛 지명들을 모으고 지명에 얽힌 옛이야기들을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40여명 회원들이 각 면 지역을 담당해서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찾아가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 현장답사를 통해 확인된 것들은 2주에 한 번씩 편집회의에서 정리했다. 2년여 동안 지역을 누비며 얻어낸 기록은 1998년 8월 30일, 1020여쪽 방대한 분량인 《순창향지(지명고)》로 묶여 나왔다. 
《순창향지》는 순창군 지명 등을 고찰한 지리지이다. 순창의 전통문화와 전설, 산천과 지리, 마을 연혁과 토착 성씨 등을 파악해 읍ㆍ면ㆍ리 별로 정리했고, 양효섭 이사장(전주상호신용금고)의 재정 지원으로 간행되었다. 발행인은 양효섭ㆍ조규동, 편집인은 양상화다. 
《순창향지》수록 내용은 이후 순창군과 관련된 많은 자료에 인용되었고, 순창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구림면지》를 비롯해 《복흥면지》ㆍ《금과면지》ㆍ《적성면지》ㆍ《동계면지》ㆍ《인계면지》등에 인용되었다. 

지역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공헌

선생은 국사편찬위원회 순창군 사료조사위원, 순창군 문화재조사위원으로서 순창이 절의와 충절의 고장임을 재조명했다. 
담양군 창평에 있었던 간아지정려비를 순창으로 이전하는데 앞장서는 등 1 읍ㆍ면 1 문화사업 발굴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노사 기정진 선생은 순창사람이다’ 세미나를 개최하고 노사 출생지에 기적비를 세웠고, 순창 지명 조사를 위해 올랐던 쌍치면 국사봉 철쭉을 보고 개발을 건의하기도 했다. 
삼인문화선양회 회장으로서 순창인들의 자긍심과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시켰다.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유옥, 무안현감 박상’의 삼인대에 깃든 선비정신을 앙양하고자 군내 초ㆍ중ㆍ고 학생 백일장대회와 삼인대에 대한 특강으로 절의 정신과 충절, 선비정신을 강의했다. 
순창과 연관된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열정적인 강의도 이어갔다. 1998년 11월 향지사 사무실에서 ‘민속학’ 강의를 시작하고 20여명과 함께 ‘서강지리학회’를 결성해 10여 년 동안 본격적인 연구와 강의를 이어갔다. 김정균 전 농업기술센터 과장이 강의내용을 정리한 《형상으로 보는 풍수》를 발간했고, 순창문화원에서 군내에 전승되던 전설을 수집해 선생이 작성한 원고를 토대로《순창의 구전설화》(상ㆍ하)로 발간했다. 
2000년에는 <전북도민일보>에 ‘순창의병사’를 중심으로 8회에 걸쳐 연재했고, 2004년 <전주일보>에 ‘재미있는 풍수이야기’를 60여회 연재하며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초빙돼 풍수지리 강의했다. 이때 고족(高足ㆍ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을 자칭한 제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졌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전북매일>에 ‘호남정맥의 영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순창지역 마을을 중심으로 80여회 연재했다. 
이외에도 저서 《한국의 지기를 찾아서》ㆍ《원시반본과 후천의 성지》ㆍ《형상으로 보는 풍수》등을 발간해 순창인의 자긍심을 내세웠다. 

▲양상화 저서《형상으로 보는 풍수》
▲양상화 저서《형상으로 보는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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