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때려주고 싶은 ‘특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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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 때려주고 싶은 ‘특권 의식’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20.05.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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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지도층에 합당한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 경구다. 사회지도층의 의식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미세먼지만큼이나 부옇고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과분한 특권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의 ‘머슴’되겠다며 스스로 나서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특급 대우와 과도한 특권 조항을 없애야 한다. “오직 주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지방 공직자와 관련된 의도적ㆍ선별적인 대우와 조치도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과 공직자에 국한할 일은 아니다. 권력자와 사회지도층을 위한 우대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 많아야 좋은 세상이 된다는 명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도록 의식과 행동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특별대우ㆍ특권의식’보다 ‘상호존중ㆍ공감소통’하며 서로 염치를 알고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예의와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이용하는 모습에 너무 길들어 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은 살다 보면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이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제는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나오는 병역 비리, 위장 전입, 부정 입학, 이중 국적, 탈세 등 셀 수도 없는 비리에 놀라지도 않는다. 당연히 분노해야 할 일 앞에서 ‘잘난 놈들이 다 그렇지’ 하며 포기하며 산다. 그러나 그 ‘뻔뻔한 행동’에 매번 분노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대열의 뒷자리에서 눈치 보며 전전긍긍할 것이다.
아론 제임스 교수(철학)는 ‘그들은 왜 뻔뻔한가’라는 책에서 “독선적이고 자의식 과잉의 특권 의식으로 똘똘 뭉친 ‘골칫덩이’를 만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며 “특권층, 혹은 어느 이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이해할 수 없는 안하무인의 행동을 하면서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을 무시해도 되고, 다른 사람이 손해를 입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으면 그들의 행동으로 인한 잠재적 피해자가 매우 많아진다”고 강조한다. 그는 “‘뻔뻔한 골칫덩이들은’ 스스로 특전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조직적으로 그렇게 한다. 이런 행동의 바탕에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특권 의식으로 다른 사람의 불만에 면역되어 있다”고 규정한다. 
‘내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라는 과도한 자의식은 잘못된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위험이 있다. ‘특권층’은 갈등 요인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온갖 힘과 꾀를 동원하고, 사회 건전성을 유지하는 자발적인 협력 행동을 분산시키는 일에 능숙하고 여러 전략을 갖고 있다. 더구나 상대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아 상대의 불만에 반응하지도 않는다. 정당한 비판이나 합리적 설명에 귀 기울이지 않고, 특권 의식을 가진 이들끼리 똘똘 뭉쳐서 자기 합리화를 강화하고, 그들 테두리 밖의 존재를 ‘하등’ 취급하며 독선적 특권의식으로 무장한 성을 쌓는다.
문제는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층 사회에 대한 양심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대처 방법이다. 매번 묵인하고 용인하면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 동등한 인간이며, 불의와 불공정,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밝혀야 한다. 체념하다 저항하고 저항하다 체념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평범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을 찾아내 버티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제대로 맞서야 한다. 무엇보다 단결하고 연대하여 동등한 존재임을 알리고, 특권 의식의 허위성을 만천하에 알려 깨닫게 해야 한다. 협력과 연대, 단결하면 불공정한 특권층을 무찌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을 품어야 한다.
‘특권의식’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멈추고, 멈춰야 했던 공의와 공익마저 무시한다. 모든 다중 시설이 폐쇄되어도 가진 자를 위한 시설은 돌아간다. 실내 테니스장과 기숙학원이 그렇다. 이를 단속할 이들이 이를 이용하는 수혜자들이니 ‘내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 할 것이다. 조직에는 늘 뻔뻔한 골칫덩이가 있다. 삶에는 부정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양심적인) 협력자들이 단결해야 더 공정해지고 덜 부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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