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기본소득운동’ 펼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상태바
[탐방] ‘기본소득운동’ 펼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6.11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본소득제 여론이 뜨겁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하며 시작된 기본소득 논의는 전 국민 지급을 끌어냈다. 여기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가세하면서 중앙정치의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 의견도 팽팽하다. 지난 8일 여론조사(와이티엔 의뢰 리얼미터 조사, 18세 이상 남녀 500명 대상) 결과 찬성 48.6%, 반대 42%로 오차 범위내 비등하다. 찬성 의견은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반대자는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고 답했다. 
 

▲‘쉼표 프로젝트’ 길거리 홍보하는 전북 네트워크 회원들.

기본소득 실험 ‘쉼표프로젝트’ 진행

전북지역 기본소득운동을 이끌어온 단체, 기본소득전북네트워는 2017년 2월 10일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해 기본소득을 알리기 위해 ‘쉼표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과도한 업무에 지친 이들에게 쉼표를, 취업준비생들의 불안한 마음에 쉼표를, 안전망 없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이들에게 쉼표를” 뜻을 담았다. 도민 4명에게 6개월간 50만 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실험이었다. 재원은 시작부터 함께한 전주화평교회가 기부했다. 당시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담임목사는 한국 기본소득운동에서 종교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역할을 하고 있어 가능했다. 이 실험에 지원한 총 800여명을 4차에 걸친 지급대상자 추첨을 통해 4명을 선정해 지급했다. 
‘쉼표프로젝트’ 결과는 어땠을까?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실험참가자 4명과 인터뷰해 작성한 ‘새로운 분배 실험 : 전북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쉼표 프로젝트의 효과’라는 논문을 참고했다. 

참가자 전원 행복지표 뚜렷한 증가

최근 1년간 집세, 공과금이 밀리면서 전기가 끊기기도 한 청년 ‘가’씨는 일주일에 6일 이상 잠을 설치고, 최근 1년 동안 자살 계획을 세우거나 시도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우울을 겪고 있었다. 이 청년은 기본소득을 받은 6개월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울과 관련 지표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행복지표가 뚜렷하게 상승했다. 
참여자 모두 행복지표가 모든 영역에서 상승했고, 실험이 끝나고도 유지되었다. 서교수는 이 변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참가자들이 새롭게 경험한 행복은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혹은 가장 소비하고 싶은 항목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소비에서의 무조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유ㆍ협상력ㆍ발언권 증가 가능성

취업성공 패키지 과정을 이수하고 취업한 26세 여성 ‘나’씨는 자신이 다니고 싶지 않은 직장을 과감하게 사직하고, 기본소득을 최후 보루로 삼아 자신이 다니고 싶은 직장이 나올 때까지 버티다 조건에 맞는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그는 기본소득이 없었다면 당장 돈이 필요해 원하지 않는 직장을 계속 다녔을 것이고, 그랬다면 원하는 직장에 지원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며 압박감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화내고, 회사에서는 순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기회를 기다리겠다는 판단이나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생계보장이 가져다준 삶의 여유였고,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생계를 위해 취업하는 악순환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었다. 개인 협상력이나 발언권 강화는 고용 관계뿐 아니라, 가정 등 일상에서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가정 폭력이나 학대 등 ‘부조리함과 부당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관계 회복 효과, 거대한 행복 가져와

3년 만에 (소원했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나 여행비용이 충분하지 않아서 망설이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통 크게 ‘부족한 경비는 대신 내주겠다’며 여행을 다녀왔다. 33세 남성 ‘다’씨는 현재까지 친구들과 회복된 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 그는 기본소득의 가장 큰 의미를 ‘상실되었던 관계 회복’으로 꼽았다. 당일치기 여행만 했던 ‘라’씨는 결혼후 처음으로 펜션을 빌려 1박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여가 증가를 넘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스트레스 감소와 사회적 평안함을 증대시킨다. 특히 다른 사람과 더 자주 어울리는 행위는 연소득 8만5000파운드(약1억2000만원) 증가하는 것과 맞먹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식단 변화, 건강 불평등 악순환 끊어

비용 때문에 식사를 줄이거나, 거른 적이 있는 ‘가’씨는 6개월간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 ‘라’씨는 간식의 질이 달라졌다. 과자보다는 건강식, 과일 등을 선택할 수 있었다. 빈곤층의 소득 부족은 음식 불균형과 영양소 부족으로 이어지고, 건강 문제를 초래하여 건강 불평등과 교육 효과 등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다른 기본소득 실험 결과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

두 아들과 시각장애인 남편과 살면서 맞벌이였던 ‘라’씨는 평생의 소원이던 자전거 타기를 성취했다. “(자전거는) 숙원사업 같은 거였어요. 나는 평생 자전거를 못 타고 죽을 수도 있었고, 굳이 내 돈 주고 자전거를 사서… 누가 선물로 사 주면 탈까.” 기본소득이 개인자격으로 주어질 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기본소득의 주요한 효과가 돌봄ㆍ노동, 상품화되지 않은 예술, 정치,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일을 할 수 있는 실질적 선택권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공동체 의식과 문화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근로의욕 감소 아닌 건강한 근로 모색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근로 의욕이 감소할 것이라는 추측에 대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참가자 4명 중 근로시간이 감소한 경우는 ‘가’씨 한 사람이다. 그는 식당 두 곳에서 한 달에 이틀 쉬면서 매일 14시간 유급 근로에 종사해 하루 수면은 3~4시간이었다. 기본소득을 받으며 한 곳을 그만두고 수면 시간을 늘렸다. 기본소득이 근로 의욕을 낮춘다는 주장에 대해 서 교수는 “장시간 야간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일하되 근로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응답한 참여자가 비도덕적인 결정인지 근본적인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주화평교회 상징적 기본소득 실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쉼표프로젝트를 가능케 한 전주화평교회는 교회 안에서 기본소득을 실천했다. 2017년부터 5월부터 2019년까지 이영재 목사 재직시 진행했다. 
화평교회 신도들은 기본소득으로 한 달에 1만5000원에서 2만원 가량을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같은 금액을 받았다. 재정은 교인들 헌금으로 충당했다. 많은 교인이 기본소득헌금으로 낸 금액보다 기본소득으로 받은 금액이 적었다. 
제일 뜨거운 반응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서 왔다. 매월 첫째주 기본소득을 받는 날 주일학교 출석률은 100%. 아이들은 게임방, 노래방, 저축 등 자신의 결정에 따라 기본소득을 썼다. 
작은 교회에서 미미한 금액으로 하는 기본소득 실천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을까? 
“교회 기본소득을 통해 신앙의 의미를 찾고, 국가나 지자체가 이 운동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이영재 목사(현 원주영강교회 목사)는 말한다. “코로나19 같은 미래 사회에 일상화될 재난, 4차산업으로 인한 대량 실업, 기업 과독점 등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불평등을 막아내고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한다. 그 정책이 기본소득이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천지 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소유주라고 말한다. 사용자는 마땅히 이용료를 내야 한다. 그 이용료를 국가가 거둬들여서 국민에게 나눠줘야 한다.” 
그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로 대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경구절을 언급했다. “당시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노예주를 말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일하지 않고 노예를 부려서 이득을 취하는 노예 사용주에 대해 한 말이었다. 누구나 일하고 나누는 차별없는 복음을 뜻하는 말이 오히려 그 반대로 이용되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 편이 아니라 사용자 편에서 하는 것이다.”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온 국민이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일구어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 정책을 더욱 보편적으로, 더 넉넉히 이어가야 한다. 이 돈이 자연스레 돌아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그는 원주에서도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농민기본소득 국회 입법청원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2017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전북의 기본소득운동은 전국에 퍼지는 씨앗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체감 경험이 기폭제가 되었지만, 전국민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 데는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처럼 작은 단위의 실천과 홍보가 밑거름된 덕분일 것이다. 
정우주 전북네트워크 대표는 “우리는 지역에서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는 기본소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활동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의 권리라는 것은 매우 낯선 개념일 수 있으나 우리 모두 깊게 고민해봐야 할 내용이다. 위험이 일상이 된 사회는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앞으로 사회를 구성해 갈 때 기본소득은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권리라는 것을 구성원들이 인정하면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기본소득이 복지나 경제 정책의 수준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가능성도 논의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공동체 부는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며 거기서 비롯된 이익은 모두가 나눠야 한다. 내가 주장하는 건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박애가 아니라 정의다.’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던 기본소득 정신이 코로나19를 딛고 전세계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는 농민기본소득과 기본소득의 논의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 오는 6월 30일 농민기본소득을 위한 전북지역 간담회를 개최한다. 오후 5시 전주시 전주비전센터에서. 

▲‘기본소득은 사랑 나눔의 실천입니다’ 기본소득봉투(위). 전주 화평교회에서 기본소득을 받는 어린이(아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