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51)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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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51) 죽음에 대하여
  • 박재근 고문
  • 승인 2020.07.08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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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은 지구의 모든 모래알보다 많지만 별끼리의 거리는 우리나라 면적에 탁구공 3-4개정도의 밀도라고 한다. 태양계가 속한 것이 은하계이고 은하계 안에는 태양 같은 항성이 2000억 개쯤 있다고 한다. (태양처럼 행성을 가진 항성은 약10억 개 정도) 수천억 개의 은하계가 모여 은하수를 이루고 있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수가 수천억 개쯤 있다고 한다. 무변광대한 우주와 무한히 영원한 시공 속에서 하루살이의 번갯불과 같은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여름에 때아닌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 피해가 막심하다 한다. 만물이 잠시 쉬었다가 가야 할 지구를 탐욕스런 인간들이 독점 소유하여 경영하면서 자연환경을 마구 훼손한 결과이다. 

우리 몸에는 약 100조 개의 세포가 있어 죽음과 태어남을 되풀이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고 한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픈 것은 그 부분의 세포가 건강을 상실하여 낡은 세포와 새로운 세포가 바뀌는 신진대사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포의 수명이 다르고 일정한 주기에 따라 매년 90% 이상이 재생되며 3-5년을 주기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재생된다고 한다. 1961년 미국의 생물학자인 레오나드 헤이플릭이 발견했다는 자료에 의하면, 세포의 재생주기는 백혈구 1-14일 적혈구 3-4개월 피부 4주 난자 10-24시간 정자 2-3일 근육 뼈 7-8개월 장기 4개월 신경세포 7년 뇌세포 60년이다. 병든 몸의 건강을 회복하려면 조급한 생각을 버리고 병든 세포가 건강한 세포로 교체될 때까지 집중관리를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앞에서 우리는 ‘나’라는 몸이 삶을 지속하는 것은 몸을 이루는 각 부분의 세포가 나이 들어 쇠약하면 죽고 새로 태어나는 신진대사를 통해 전체의 몸을 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 갖기를 욕망하는 것은 ‘나’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없음에서 태어나 있음이 삶이고 있음에서 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갖기 위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걸 의미한다. 남의 기준으로 나를 보며 남이 가진 것들을 갖기를 욕망하고 남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산다면 자아의 삶은 없는 것이 된다. 세속적 욕망이란 자아를 잃어버리기 위한 욕망에 불과하다. 괴로움을 주는 세속욕망을 죽임으로써 나를 찾아 살며 영혼을 편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는 같은 말이다.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가치를 위해 죽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즉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그릇(몸)을 죽여 내용(영혼, 뜻)을 살리는 것이다. 몸이 죽어도 뜻이 살아 있다면 그 뜻은 다른 그릇에 담길 수 있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좋은 마음을 먹고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마음이 몸을 천하게도 귀하게도 한다. 몸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것은 몸속에 담겨있는 마음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이다. 잘 산다는 것은 남하고 비교하여 부귀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남보다 돈을 더 가진 것, 더 높은 지위를 가진 것. 명성을 가진 것, 이런 것은 모두 죄악과 연관된 것이다. 참으로 잘 사는 것은 나와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사는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진리는 아상(我相)이라는 의식이 없는 곳에 있다. 참 ‘나’로 살기 위해서는 몸에 속한 ‘나’인 아상을 죽이고 마음에 속한 ’나’인 영혼을 살려야 한다. 인간의 영혼에는 이성이라는 신이 살고 있다. 신이 살고 있는 영혼을 살린다는 것은 가장 의미있고 현명하게 사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안에 있는 신의 뜻인 양심에 의존하고 담백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이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이다. 마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낡은 사고방식을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병적인 생각은 건강한 생각으로, 쓸모없는 가치관은 쓸모 있는 가치관으로 늘 변화를 주어야 한다.

“삶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을 덜어내는 것이다.”(장자)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삶에서 오늘 하루를 죽였다는 뜻이다. 죽음이란 삶을 깨뜨리는 것이며 삶을 깨뜨린다는 것은 생각 욕망 애착의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니 곧 깨닫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도 죽음이 소유를 덜어내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현자는 사람을 얻기 위해 살아서 소유를 다 쓰고 어리석은 사람은 소유를 위해 사람을 잃고 남과 다투다가 죽어서 남에게 빼앗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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