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저절로 굴러가는 ‘쌍치 작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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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저절로 굴러가는 ‘쌍치 작은 도서관’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7.15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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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서도 벽지, 쌍치에는 신기한 도서관이 있다. 저절로 굴러가는 도서관이다. 오라 하는 사람 없는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우르르 몰려온다. ‘강아지 놀이’하는 아이가 기어 다니는 옆, 테이블 아이들은 책 삼매경이다. 도서관 앞 너른 터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논다. 조금 늦게는 중학생들도 모여든다. 도서관이 초등학생들로 차 있으니, 바깥 테이블은 중학생 차지다. 요일마다 서예, 과학교실, 여행의 기술, 생활영어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놀던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뭘 하라 마라 하는 사람도 없다. 관장은 아이들하고 놀고 이야기한다. 농사지은 감자를 쪄 내놓기도 한다. 모두 무료이다. 

▲도서관 앞 테이블은 중학생 차지다. 
▲‘여행의 기술’ 중등 영어 수업 끝나고 한 컷.
▲선생님이기도 하고 이모이기도 한 고영선 관장.
▲도서관 곳곳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도서관 안 졌으면 어쩔 뻔했어?‘

이 작은 도서관 지을 때, ‘누가 온다고, 누가 도서관 간다고 짓냐’는 주민이 많았다. 지금은 모두, ‘도서관 안 졌으면 어쩔 뻔했어?’ 반문한다. 
도서관은 작년 5월 들어섰다. 도서관이 생기고 아이들 생활이 달라졌다. “도서관이 없을 때는 학교 끝나면 그냥 집에 갔어요. 지금은 도서관에 와요.” 임주현(쌍치초 5년) 학생은 프로그램이 없을 때도 도서관에 온다. 아이를 데리러 온 이은경(49ㆍ신도리) 학부모는 “시골은 아이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활동도 하니 안심됩니다”라고 말한다.
박주아(쌍치중 2년) 학생은 “전에는 갈 데가 없어 그냥 돌아다녔어요. 겨울에는 동상이 걸렸어요”라고 말한다. 집에 아이들만 집에 두어야 했던 부모에게, 게임 친구밖에 없던 아이들에게, 갈 데 없어 동상이 걸리도록 돌아다니던 중학생들에게 도서관은 얼마나 큰 선물일까?

“놀이터, 친교 공간 그리고 숨통”

도서관에 온 아이들은 책부터 든다. 문화 상품권이 걸려있는 ‘100권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 읽고 책 목록을 적은 아이가 기자에게 자신의 책 목록을 자랑한다. 모두 한, 두 쪽을 채웠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 때가 가장 좋다. 도서관 앞에서 씽씽이도 타고, 웬만한 놀이는 할 수 있다. 
“친구들하고 밖에서 노는 게 좋아요. 술래잡기, 얼음땡하고 놀아요. 영화도 보고요. 도서관에 방방도 있으면 좋겠어요.” 양지선(쌍치초 5년)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는 못 놀아요. 학교도 강당도 못 가요. 쉬는 시간은 멍하니 책상에서 책만 읽어야 해요. 착한 선생님들이 다 호랑이 선생님이 되었어요.” 이민서(쌍치초 3년) 
쌍치에는 피시(PC)방도 노래방도 없다. 카페는 돈이 부족해 못 가고, 순창읍에 가는 버스는 있어도 시간 맞춰 집에 올 버스는 없다. 중학생들은 도서관 밖 테이블에서 라면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도 한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책 읽는 곳, 놀이터, 친교 공간 무엇보다 ‘숨통’이다.

▲도서관에 오는 모든 아이들에게 있는 책목록. 한 두쪽을 모두 넘긴다. 

“선생님 그리고 이모인 관장님”

박성우(39ㆍ운암리) 씨는 아이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자주 와요. 기증받은 헌 책은 많은데 신간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도 좀 더 다양하면 저도 참여하고 싶어요.” 박 씨는 “도서관 관장님 이야기를 꼭 써달라”고 한다.
“애들이 충분히 놀 수 있게 해주시고, 그 사이 책 한 권이라도 읽게 애쓰십니다. 세심한 배려로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어떤 사서 선생님이 책 안 읽을 거면 들어오지 말라고 한 적이 있어요. 우리 도서관 샘은 착하고 잘 챙겨줘요. 읽을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다 사주세요.“ 김비하(쌍치중 2년)
고영선 관장은 ‘선생님’ 보다 ‘이모’라고 불린다. 동네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과 같이 퇴근(?)하기 일쑤다. 고 관장도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도서관이라 ‘정숙’, ‘간식은 밖에서’ 등 크고 작은 규칙이 있다. 비를 피해 도서관 벽에 서서 라면 먹는 모습을 보고 돗자리를 깔아주기도 했는데 비가 들이쳐 소용없었다. 도서관에는 휴게 공간이 따로 없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데 비 올 때는 무용지물이다. ‘정숙’이라는 규칙도 늘 도전받는다. 몰려와 게임 하는 아이들, 소리치며 노는 아이들… 갈데없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관장은 “지켜야 할 것이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이들, 주민들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주민과 면, 군이 함께 아이들을 키워요

마침 <여행의 기술> 수업시간이었다. 영어 수업이다. 이남숙(43ㆍ구림면) 강사는 학생들과 조그만 강의실에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이날 여행지는 화가 프레드릭 프랭크의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라는 미국에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곳곳의 작품들과 영어 해설들이 어려울 법한데 학생들은 한 시간 내내 몰입한다. 수업을 마친 천서현(쌍치중 1년) 학생은 “꽉 찬 기분이에요. 꼭 책 한 권 다 읽고 난 느낌이에요.”라고 말한다. 
고 관장은 강사들이 고맙다. “적은 강사료에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주세요. 재능 기부해주시는 선생님도 계시고요. 오실 때 간식도 사 오세요. 제가 운영자지만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도서관은 저절로 굴러가는 도서관이에요.”
면민회에서 간식비를 지원하고, 지역사회보장협의회에서 월 1회 목요일에 김밥을 보낸다. 면사무소는 친정 같다. 늘 비빌 언덕이 돼준다. 행복나눔냉장고(공유 냉장고)에 주민들이 넣어주는 간식도 고맙기 그지없다. 주는 대로 아이들에게 잘 먹이고 있다. 군립도서관의 행정 실무 지원과 군청의 프로그램 지원도 큰 보탬이 된다. 관장님 말처럼 ‘저절로 굴러가는 작은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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