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37)/ 병영1 -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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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37)/ 병영1 -전속
  • 선산곡
  • 승인 2020.12.0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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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군의학교교육이 끝나고 전군에 흩어진 의무병 동기 중 우리 네 명은 운이 나쁜 병사들이었다. 통합병원이나 후송병원으로 배치받은 동기들은 전방이 아닌 후방이라고 모두 환호성을 지었지만, 우리 네 명만 ‘105보충대’라는 뜬금없는 명칭에 거의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대구에서 야간군용열차를 타고 서울 청량리를 거쳐 하루 걸려 내린 곳이 원주(原州)였다. 내 생전 처음 발 디뎌본 강원도 땅이었다. 
속칭 ‘팔리는’ 날 오후, 달랑 나는 혼자 남아 있었다. 병과가 다른 그 많던 신병들이 각기 인솔 나온 하사관을 따라 군용트럭을 타고 빠져나간 뒤였다. 동기들 세 명은 그나마 소속이 같아 혼자 남은 나를 위로하듯 트럭 위에서 손들을 흔들어 주고 떠났다. 썰물 빠지듯 모두가 떠나간 연병장에 정말 나 혼자뿐이었다. 개별적으로 나누어 준 인사명령서를 보고 또 봐도 내가 전속된 부대명은 이상하기만 했다. 
껄렁껄렁하게 생긴 병장 하나가 해가 중천으로 기울 무렵 모습을 나타냈다. 모두 하사관 인솔에 군용트럭을 타고 떠나갔는데 특이하게도 내 인솔자는 사병이었다. 그가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너 우리 부대 이름이 뭔지 알지?”
버스를 기다리며 병장이 내게 물었지만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야시소라는 말 처음 들어봤어?”
“…….”
대답하지 않는 것은 모른다는 뜻과 같은 것이었다. 야시소. 아닌 게 아니라 생소한 부대명이었다. 조금 전 연병장에서 꽥꽥거리고 돌아다니던 보충대 주임 상사에게 왜 나는 데리러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느 부대야? 명령서 줘봐!”
화락, 소리가 나게 내 손에서 낚아 챈 특명지를 보던 주임상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시소 아냐? 얌마! 오늘 팔린 신병 중에 네가 최고로 좋은 부대야! 조금 기다리면 인솔자가 와!”
그렇게 들었던, 최고로 좋은 부대라는 야시소가 뭔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병장의 한쪽 입꼬리가 뒤틀리며 위로 올라갔다.
“너 810 의무병이지? 우리 부대 의무부대 맞아. 10종 군인 송장을 연구하는 부대지. 부대 이름이 ‘야전시체연구소’란 말이다. 야시소! 몰랐을 거다.”
눈앞이 노래지는 나를 보고 병장은 이죽거리고 웃었다. 야전시체연구소? 약칭 야시소였으니 의심할 여지 없이 들어맞는 부대명이었다. 국가에서 분류하는 군인의 몸은 사람이 아닌 ‘10종’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보충대 주임상사는 최고로 좋은 곳이라는 말로 이 험악한 부대에 떨어진 나를 조롱한 것이 틀림없었다. 자기 뜻에 상관없이 명령에 움직이는 게 군인이라지만 고르고 골라 나는 이런 송장 부대로 떨어진 것이다. 내 생전 지도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던 강원도 원주 땅으로 떨어진 것도 현기증이 나는 일이었다. 의무병 동기 셋은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전속되었는데 홀로 남은 나는 하고많은 부대 중에서 시체연구소에 떨어진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시멘트 담장이 긴 도로변을 지나 기역으로 꺾어진 길에서 버스가 섰다. 절반 얼이 빠져 병장 따라 내린 곳이 ‘승진하숙’이라는 작은 간판이 걸려있는 가게 앞이었다. 흰 페인트 담장 안이 군 시설인 모양이었다. 담장 모서리 작은 문에 캘빈 총을 멘 위병이 서 있었다. 51후송병원 후문이라는 나무 간판이 쪽문 옆에 길게 붙어 있었다. 1971년 10월 2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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