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을 허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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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을 허무는 것
  • 안종오 기자
  • 승인 2010.07.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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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정스님에 대하여 그분이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글을 쓰고 출판하는 스님 정도로만 생각했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스님의 책 한 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스님의 육신이 연기로 사라진 후에야, 그 분의 유언을 보고서야 자기주도적인 아름다운 삶을 사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조카가 법정스님에 대하여 물어 왔어도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단지 무소유만 생각났다.

그날 바로 동네서점으로 가서 스님의 책 대여섯 권을 샀다.

그래서 군데군데 펼쳐보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자연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 산에서 살다보면 자연처럼 위대한 교사가 없다.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 그것은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얻어듣는 것,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인 것이고 그때그때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은 태양과 물과 바람과 나무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무상으로 준다. 우리는 그걸 감사하게 받아쓰면서 활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허물고 더럽히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생명의 근원을 우리가 자꾸 허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법정스님의 책 ‘산에는 꽃이 피네’ 라는 책으로 1998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니 10여년이 훌쩍 지난 책이었다.

나는 스님의 이 말씀을 접하고 요즘 같이 4대강이니 뭐니 하면서 자연의 원형을 훼손하고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한편으로 녹색성장이란 말로 치장하는 행태에 대한 예견처럼 한 말씀처럼 들리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생명이란 살아 있는 목숨이란 의미이다. 생명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어떤 생명이든 홀로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진 맹수들도, 아주 뛰어난 두뇌로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우주를 나는 인간들도, 아니 광합성 작용을 통해 스스로 생명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풀이나 나무들도 홀로서는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이 이처럼 스스로 자연생태계의 다른 생명체와 깊은 교감을 원하는 것은 다른 생명체와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만이 자신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공동체 속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사람이든 동물이나 식물이든 홀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온전한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생명의 세계에서 서로 나누거나 분리할 수 없는 것이 공동체 생명이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듯이 우리에게 자연이 중요한 것은 인류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 속의 숱한 생명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에 포함되기에...

우리에게 산과 강, 바다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내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내 자식을 죽이는 것이며 인류를 죽이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 목숨처럼 소중한 이유는 자연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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