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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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웃
  • 강성일 전 읍장
  • 승인 2021.05.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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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금과 전원마을ㆍ전 순창읍장)

우리 집 뒤 공터에 작약 꽃밭이 생겼다. 이웃집 설경하 씨 작품이다. 지난 411일 일요일이었다. 안 사람이 내게 말했다. 옆집에서 뒤 공터에 꽃을 심는다니 함께 하자고듣는 순간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설경하 씨는 군청에서 계장으로 일하기 때문에 쉬는 날엔 집일도 많을 텐데 공터에 꽃을 심는다니 맨날 노는 나로서는 염치가 없었다.

우리 집과 옆집 뒤에 비무장지대처럼 40여 제곱미터 정도의 공터가 있는데 개인 소유도 아니고 눈에 띄지도 않아 방치되어 있어 잡풀만 우거져 있었다. 나는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설 계장과 집사람은 돌과 잔여물을 걷어내 밭으로 만들었다.

땅도 사람도 비슷하다. 좋은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땅도 좋은 건 보슬보슬하고 연장도 순하게 받아 준다. 이곳은 산()으로 돌이 많고 척박했다. 나는 2시간 정도 일을 하고 들어 왔고 설 계장과 집사람은 오후까지 했다.

다음날 가보니 작약 알뿌리(구근) 70여 주를 심고 풀을 방지하는 비닐까지 씌워져 있었다. 구근, 비닐 등 모두 옆집에서 샀다. 우리도 비용을 부담하겠다 해도 사양한다. 옆집 바깥양반은 전주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본받을 게 많다. 자기 부인에게도 높임말을 쓰며 모든 사람을 예의로 대하고 동네일에도 솔선한다. 마을 입구에 설치한 솟대 수십 기와 여러 가정에 나눠준 나무로 만든 새집도 자기 집에서 자기 연장으로 큰일은 본인이 하고 몇몇 주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일하는 동안 집안이 어질러지고 시간을 뺏겨도 부부는 웃는 얼굴로 함께 일했다.

설 계장은 군청에 다니니 주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 행사, 공연, 순창군이 소개되는 텔레비전 프로 등을 마을 카톡에 올려 주기도 한다. 고마운 일이다.

광주 아파트에 살 때였다. 어느 날 아랫집에서 찾아왔다 자기 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다. 그 집에 가보니 대단히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호텔 로비 수준이었다. 주인의 깔끔한 성품이 느껴져 이걸 해결하려면 마음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딸 방에서 물이 새 침대가 젖어 있었다. 우리가 고의로 한 건 아니지만 미안해서 굽신했다. 배관업체를 불러 수리하고 침구, 옷 세탁비, 방 도배 비용 등을 배상 해줬다.

단독주택에 사니 아파트 같은 문제는 없어 좋지만 모든 일을 내 손으로 해야 하는데 몸 쓰는 일에 서툴고 취미도 없는 나는 터덕거리고 핀잔도 듣는다. 여러 번 계속되니 스트레스였다.

내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살면서 새로운 일은 절대 만들지 말자. 꼭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하다 안 되면 그만두고 좀 불편하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집에서 역할도 자연적으로 나뉘었다. 사람들 눈에 띄는 집 앞쪽 풀 뽑기, 꽃 심기 등은 안사람이 하고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집 뒤쪽이 내 담당인데 대충한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직선, 가꾸기 등은 인간의 방식이고 자연은 곡선, 순환이다. 적당한 게으름, 둔감함이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이고 힘들지 않아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엔 흔들리고 비틀거리며 휩쓸려 살았지만, 지금은 내 주관대로 살 수 있어 좋다.

이곳에서 느끼는 기쁨 중의 하나는 정을 나누는 이웃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은 선택할 수 없다. 만난 인연을 잘 가꾸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꽃밭을 선물 받았으니 우리는 밥 한 번 사야겠다. 박광성 씨, 설경하 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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