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찾아가는 길목, 용내 저수지가 정 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모신 듯한 자태를 뽐낸다. 산과 논, 들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양귀비가 수줍은 듯 인사하는 집
지난 18일 오전 찾아간 이경현(69)ㆍ김옥인(64) 부부의 풍산면 상촌로 자택은 자연의 품에 마음껏 안긴 ‘그림 같은 집’이다.
대문도 없는 집 앞, 좌우에서 양귀비가 수줍은 듯 빨간 얼굴을 흔든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진돗개 ‘봉돌이’와 시베리안허스키 ‘보리’가 경쟁하듯 큰 소리로 반긴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갔음에도 개들의 기척에 주인 부부가 풀을 베다 말고 기자 일행을 웃음으로 맞는다.
이곳 집터는 이경현 씨가 나고 자란 태자리다. 남편 이경현 씨는 군무원을 퇴직하고 고향에 내려온 지 5~6년 쯤 됐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아내 김옥인 씨는 25세에 결혼해 서울살이를 하면서 ‘지리산 산청’을 동경하다 남편의 설득에 순창으로 왔다.
조부모 합장묘ㆍ부모 묘 아래 집터
집과 길의 경계선, 앞마당은 온통 울긋불긋 꽃밭이다. 집과 뒷산은 나무들과 고추, 양파 등 초록 농작물 차지다. 삶터 바로 뒤에는 조부모가 함께 모셔진 합장묘가 있고, 그 아래 부모 묘 봉분 2기가 양지바르게 자리했다.
마당 꽃밭과 뒷산 밭은 부부가 갈고 가꿨다. 부부는 황토방 ‘茶담집’도 수년 간 손수 지었다. 발길 닿는 곳, 손길 미치는 곳, 눈길 머무는 곳 모두 부부의 숨결이 담겨 있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이름 없는 꽃망울에도 각각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앞마당과 꽃은 아내의 몫이고, 뒷산과 농작물은 남편의 담당구역으로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황토방에 앉으니 너른 유리창 밖으로 용내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보이차를 내 주시는 부부는 근심 걱정 하나 없는 표정이다. 아내는 “저녁노을이 저수지 너머로 지는데, 그 때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자랑했다. 기자 일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술 한 잔 하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꼈다.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부부에게 수차례 사진 촬영을 요청한 끝에 어렵게 아내의 승낙을 받아냈다. 남편은 “사진은 무슨, 10년 후에나 찍지, 아직 집도 정리가 다 안 됐는데”라면서 마지못해 촬영에 응했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왔을 때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마시는 공기가 정말 좋다”면서 “서울에서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아들 둘은 서울과 수원에서 먹고 살기 바빠서 이 멋진 집에 잘 못 온단다. 기자 일행이 아들들 대신 자주 찾아뵙겠다고 하자, 아내는 “언제든 오시면 커피와 차는 무제한으로 드린다”며 또 웃었다.
정말 그림 같은 집에 사는 미소가 아름다운 부부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 양귀비를 훑고 지나가자 빨간 손짓으로 보이차 마시러 다시 오라며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