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일기] 청개구리 유리벽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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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일기] 청개구리 유리벽 타기
  • 최철 독자
  • 승인 2021.08.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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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사람만 사는 게 아니다
최철(75ㆍ적성 농소)

2010년 귀향하여 고향마을에 살고 있다. 컨테이너와 마을회관에서 지내다가 다음해 새로 집을 짓고 10년 넘어 살고 있다. 농산촌 집들은 산을 등지고 집 앞은 바로 전답과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내 집터는 남들이 살았던 터를 구하기 쉽지 않아 좀 떨어진 들 가운데 논다랭이를 구해 집을 지은 것이라 들 가운데 집이다.

집 주위는 논이거나 밭이어서 경운기, 농기계들이 지나다니고, 최근에는 농약을 뿌리는 드론도 자주 나타난다. 집마당은 조금은 넓은 편인데 시멘트 포장을 하지 않고 옛날 논바닥 그대로 풀밭이다. 그렇다고 새로 잔디를 심지도 않아서 그냥 잡초가 사는 땅이다. 질경이, 바라구, 피 등등이 그대로 견디고, 강한 놈이 세력을 얻어 번성하고 있다. 비가 오면 풀밭에 물이 고이고 질퍽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1년에 몇 번씩은 예초기로 풀을 깎아주는 것이 전부인데.

금년에는 비도 적게 오고 날이 뜨거워서인지 청개구리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내 집 거실 앞쪽으로는 커다란 유리창이 앞마당을 보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데 차광이나 비 가림시설을 하지 않아 비바람이 불면 유리벽 면으로 비가 들이치곤 한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6월 하순쯤부터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 유리벽에 청개구리가 나타났다. 집안에 불이 켜지면 작은 나방들이 불빛을 찾아 유리벽에 붙고, 그것들을 포식하려는 청개구리의 유리벽 타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에 보면 창 아래턱(인방)에는 청개구리가 실례한 똥이 떨어져 있다.

유리창 틀 위를 살피니 인방과 창틀 사이에 그놈들이 은신하고 있다. 물경 열두 마리씩이나! 낮에는 거기 숨어 버티다가 밤에 불이 켜진 네댓 시간 벌레들을 잡아먹고는 불이 꺼지면 다시 창틀 사이로 올라가 20여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날이 많이 뜨거운 폭염 낮에는 창과 벽에 호스로 물을 뿌리곤 하는데 청개구리 샤워는 덤이다.

청개구리는 유리벽에만 오는 것이 아니고 방충망 틈으로 안방까지, 화장실에도 자주 들어오는 것이다. 손으로 잡아 창밖으로 던져 내보내지만 어떻게 들어오는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집주위에서 보이는 얼룩이 참개구리는 청개구리보담 덩치가 훨씬 큰데 그놈이 창문이나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다. 아마도 벽타기에 소질이 없거나 집밖 풀밭에서 섭생하는 것이 유리해서일 것이다.

여름, 우리 사람에게는 덥고 뜨거워 힘든 때이지만, 풀과 나무와 야생동물, 파충류, 양서류, 작은 곤충 등 미물들에게는 축복이 내리는 풍요의 계절인 것이다. 이 땅에 우리 사람만 사는 게 아니니 좀 부드러운 눈길로 그들을 봐야할 것이다.

벌써 입추 말복이 지나니 아침저녁 좀 시원해졌다. 머지않아 청개구리가 유리창 틀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어렵고 추운 겨울 잘 버티다가 내년에도 유리창 벽으로 찾아오길 바란다. 나는 내년에도 앞마당에 시멘트 포장은 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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