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곡 작가
내겐 두 권의 필사본 시집이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하운의 <보리피리>다. 펜으로 먹 잉크를 찍어 꼼꼼히 쓴 페이지에 여백이 생기면 삽화도 그려 넣었다.
중학생 때였다. 작은형이 얇은 시집 한 권을 펼쳐 보이며 시 한 편을 설명해주셨다.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 내용 중 ‘인환(人寰)’이라는 낱말을 납득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 어린 꼬맹이에게 무슨 뜻으로 고난한 삶을 살았던 시인을 이야기하고 시를 설명해주셨을까.
나는 형님의 바람이었을 지도 모르는 시인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바람 한쪽이나마 채워드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위안이 있다. 시집을 보고 베끼는 나를 말 없이 지켜보았을 형님의 미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작성된 문자와의 비교 때문인지 요즘 ‘육필(肉筆)’, ‘손 글씨’란 말이 자주 쓰인다. 그 육필로 드문드문 이어진 문장기록이 벌써 대여섯 권의 책이 되었다.
그 중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베껴보는 일처럼 좋은 감상법은 없다. 초속(秒速)으로 읽은 뒤 감성에 사로잡히면 곧 옮겨 적는다. 달구지를 타듯 천천히 흔들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옮겨 적을 수 있는 좋은 시를 만나는 일은 요즈음 쉽지 않다. <보리피리>의 필사본을 만들며 느꼈던 감회는 옛날의 것이라지만 지금껏 자작시 한 편이나마 스스로 적는 일은 별로 없다. 겨우 달구지 타는 흔들림에 만족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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