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축제에서 슬로푸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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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축제에서 슬로푸드를 생각한다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1.11.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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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와 환경오염으로 전통음식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말까지 전세계 1000개 소멸위기 음식의 자세한 목록을 작성했는데, 한국에서도 전통 방식으로 담가 먹는 된장ㆍ고추장을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9월 28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열린 ‘2011 슬로푸드대회’를 주관하러 방한한 국제슬로푸드협회의 파올로 사무총장이 농림수산식품부 기자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슬로푸드협회의 생물종다양성재단에 등재된 1000개의 사라져 가는 음식을 조리법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할 겁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된장과 간장ㆍ고추장도 함께 전시하는데, 지금처럼 공장식 대량생산 체제로 가다가는 전통 방식이 소멸할 수 있음을 경고하자는 뜻입니다.”

‘미각의 땅 코리아’를 주제로 열린 이 대회의 ‘세계의 소멸위기 음식’에 우리 한국의 전통 장(醬)이 포함된다는 보도이니 무심코 지나칠 일은 아닌 것 같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9년 로마의 유서 깊은 스페인 광장에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진입하는 것에 대항했던 이탈리아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물리적으로 막기보다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지키고 살리는 방법으로 슬로푸드 운동을 택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된장ㆍ고추장ㆍ김치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슬로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전통 식품에 대한 수요도 상당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요리하는 게 귀찮아서 식구가 적어서, 만들기 어렵다며 대량생산으로 제품화한 식품을 먹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들은 원재료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드는 지에는 관심이 적고 가격이 싸고 구입이 용이한 공장 제품에 맛 들려 있다. 여기에 기업은 원가 절감ㆍ경쟁력 강화 등을 앞세워 수입산이나 유전자 변형 농산물까지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지난해 180억 들인 ‘해썹(HACCP) 메주공장’에서 수입콩을 사용했던 사례나 최근 군이 수백억원을 투자한 메주공장, 절임류공장, 발효미생물센터 등을 대기업에게 무상 사용케 하려는 조짐이 이를 증명한다.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대형마트들의 대량 구매방식은 작은 농가나 소신껏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가격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농산물이나 축산물도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처럼 규격화되고 언제 어느 때고 살 수 있는 공산품이 되어버렸다. 채소나 과일 본연의 맛은 잃어버린 채 소스와 조미료의 맛에 익숙해져 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맛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규모 공장 제품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의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게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이런 획일화된 맛에서 각 지역의 고유한 맛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오랫동안 집안마다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손맛을 보호하고 인공적인 힘을 가해서 웃자란 농산물이 아닌 본래 모습대로 자란 제철 채소나 과일, 고기를 먹자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의 맛이 표준화, 획일화되어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음식을 지키는 일이다. 질 좋은 재료를 공급하는 영세 생산자를 보호하고 둔해진 혀를 일깨우는 일이다. 이는 유기 농업, 환경 농업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전국 최초의 ‘장류특구’이자 장수고을이며 ‘전통고추장 지리적표시제’ 등록을 자랑하는 우리 고장에서 조차 생산성 향상, 거대한 자본, 일자리 창출 등 듣기 좋은 말로 대기업 제품의 홍보에 앞장서는 것은 겉과 속, 앞과 뒤가 다른 행태로 보이는 것은 기우일까.

‘고추장 고을 순창’은 ‘대상’이나 ‘사조’라는 수식어보다는 ‘전통’이라는 사실이 우선돼야 한다. 지난 20년 가깝게 공들여 온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수백억원을 투자해 공장화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생산성 향상, 효율성 제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앞세워 ‘전통’을 무시하기 보다는 수백년 내려온 우리 입맛을 지키려는 영세한 제조 장인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일에 더 치중해야 한다. 정부도 고추장ㆍ된장ㆍ간장ㆍ청국장 등 전통식품에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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