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 물레방앗간 강대천 씨 막내딸 강묘이 씨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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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물레방앗간 강대천 씨 막내딸 강묘이 씨 선행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2.07.13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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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회룡·봉곡 각 450만원, 진주강씨문중 100만원…서울에서 김밥 장사 등으로 번 돈 1000만원 기부
자라난 봉곡마을을 찾은 강묘이 씨.
태어난 회룡마을을 찾은 강묘이 씨(왼쪽).
자라난 봉곡마을을 찾은 강묘이 씨(가운데).
자라난 봉곡마을을 찾은 강묘이 씨(가운데).

 

지난 3일 일요일이에요. 태어난 마을이라고 회룡에 450만원, 자란 마을이라고 봉곡에 450만원 그리고 진주강씨 문중에 100만원을 기증했어요. 김밥 장사한다고 최근에 하루 4만 원도 벌고 5만 원도 버는데 코로나 시대에 돈을 제대로 벌었을 리 없어요. 근데 1000만원이라는 큰돈을 기부했어요.”

지난 6일 수요일 오후, <열린순창> 사무실로 강귀원 순창고추상회 회장, 구림 회룡마을 한한수 이장, 봉곡마을 신명태 이장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일행은 구림 강배천 씨 막내 딸 강묘이 씨가 1000만원을 기부한 주인공이라며 그녀의 선행 이야기를 앞다퉈가며 전했다.

 

구림 회룡에서 나고, 봉곡에서 자라

강귀원 회장은 문중의 인연을 소개했다.

나하고는 10촌 관계지. 내가 74, 집안 동생이 72살 먹었어. 이름은 강묘이라고, 지금 서울 살아요. 태어나기는 구림 회룡마을에서 태어났고, 살기는 구림 봉곡마을에서 물레방앗간을 하던 친정아버지 강대천 씨 막내딸로 살았지. 출가해서 아무 탈 없이 잘 산 갑다 했제. 서로 왔다갔다 한 것도 없고. 근데 마을에 들렀는가봐. 사촌 동생이 오라고 해서 갔더니, 태어났다고 고향 회룡마을에 450만 원 내놓고 또 살았다고 봉곡마을에 450만 원 내놓고 마을 주민들 놀러 갈 때 쓰라고. 그러면 900만 원 아니요? 또 우리 문중에 태어나게 해 줬다고 100만원, 합쳐서 1000만 원을 내놓았어.”

강 회장은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그 옛날에 다들 없이 산 게 보리방아를 찧었어. 쌀 방아는 내가 보기에는 안 찧은 것 같아. 그 어려운 시기에 오빠는 이발사 하고. 거기서 어렵게 자랐지, 옛날에 다 안 그랬소? 어렵게 산 실정을 알다 보니까 나도 어렵게 살았으니까 어려운 사람 도와주자, 크게는 못할지언정 친정하고 문중 이렇게 돕자고 한 거죠. 묘이가 국민학교나 나왔능가 몰라.”

 

1000만원 기부, 10년 전부터 계획

한한수 이장은 강묘이 씨가 10년 전부터 이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며 말을 이었다.

강묘이 씨한테 돈을 얼마나 벌어서 이렇게 큰돈을 갖고 왔냐고 물으니까 김밥 장사한다고 하는데, 코로나 시대에 돈 벌 리가 없어요, 지금. 성의가 참 고맙잖아요. 그래서 신문에 냈으면 어떻겠냐고 회장님한테 여쭈니까 동감이다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한한수 이장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 자라고 사셨지만 최근에 남편이 작고하셨는데 친정아버지 묘지가 우리 마을 인근 땅에 있어서 거기다 모셨다면서 강묘이 씨가 벌초도 하고 그러시면서 1년에 한두 차례씩은 방문하시는데, 이번에도 기부만 하고 김밥 장사해야 한다고 바로 가버리셨다고 설명했다.

신명태 이장은 제가 손이 정말 부끄럽더라고요라면서 말을 이어받았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한창 힘들 때 하루에 김밥 4만 원어치를 판 적도 있었데요. 근데 그걸 막상 받으려고 보니까 손이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사실 받기가 어려웠죠. 그리고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7월 달에 종합소득세도 내야 하고 장사도 안 되는데 어머니 뭔 돈이 있어요?’ 그러니까 꼭 돈이 있어야만 낸다냐, 내가 빚내서는 안 낸 게, 내가 이렇게 어려울 때라도 덜 쓰고, 내가 10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일이니까 해야겠다, 내가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한 게 그래야겠다고 하니까 어머님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했다고요.”

 

고향 순창의 정 가슴에 품고 살아

강묘이 씨는 고향 순창을 향한 진하디 진한 정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터전을 일궈가는 많은 향우들의 심정도 비슷하겠지만, 강묘이 씨는 고향 마을에서 오순도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사는 정이 정말로 그리웠을 테다. 10여 년 전부터 그 마음을 담아 고향 마을을 위해 작은 기부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을 테다. 마을 분들 여행이라도 한번 보내주자고 말이다.

신명태 이장은 서울에서 장사하시며 힘들게 생활하시면서도 이 일을 10년 만에 실행에 옮기셨다면서 객지로 도회지로 올라가셔서, 정말로 나중에 고향을 위해서 어른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겠다라는 확고한 마음가짐을 10년 전부터 세우고 실천하신 거니까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고 말했다.

 

뭔 사진까지, 기사 안 쓰면 좋겠어

강귀원 이장은 휴대전화를 열어 강묘이 씨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필요할 것 같아서 동생한테 사진을 보내라고 했어요. 근데 아니, 오빠 뭔 사진까지 보내야, 기사도 안 쓰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고.”

지난 11일 오전 11시 무렵 강묘이 씨에게 전화를 했다. 강묘이 씨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지금 터키에 있어요. 서울대학교 후문 쪽에서 김밥장사를 하는데,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인 터키 유학생이 저를 꼭 모시고 터키를 구경시켜드리고 싶다고 해서 지난 920시간 비행기 타고 왔어요. 부모님들이 너무 반갑게 맞아주세요. 한국에는 21일에 돌아갈 예정이에요.”

강묘이 씨는 율북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며 말을 이었다.

정동영이가 동창이에요. 내가 키가 하도 쬐깐한 게 아버지가 나를 9살에 학교를 보내서 다른 친구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순창은 국민학교 졸업하고 15살 때 떠났어요. 남편이 6.25때 부모님을 잃어서, 아버지 묘 옆에 모셨어요. 저도 나중에 아버지 곁에 묻힐 거고요.”

5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슬하에 3남매를 뒀다는 강묘이 씨에게 터키 여행 건강하게 마치고 오시라고 인사를 하자, “순창에 갈 때 꼭 연락하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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