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1960년대 순창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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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1960년대 순창시장
  • 허선준
  • 승인 2023.01.1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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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준 전 순창문화원장

 

순창시장과 주변상가

1. 옥천초등학교(탱자나무 울타리)  2. 정미소 3. 미곡상회  4. 학우사(서점) 5. 서장 관사  6. 옥천초등학교 분교  7. 서울상회(비단가게)  8. 대성철물점  9. 동성상회(그릇가게)  10. 대장간   11. 갑산옥(중화요리)  12. 비단가게  13. 신발가게 장옥  14. 은파미장원  15. 순창고물상  16. 밀림당 빙과  17. 육일정(사정)  18. 육일정 과녘  19. 삼베(포목)전  20. 싸전(미곡시장)  21. 채소전  22. 시장당 한과점  23. 영화당 한약방  24. 쇠전 머리국밥집  25. 쇠전(우시장)  26. 장옥  27. 곶감·밤 전  28. 어물전  29. 공동우물   30. 만복하숙옥  31. 광주관  32. 보배상회  33. 신흥상회  34. 칠성이발관  35. 우체국  36. 베개딱지전(자수전)  37. 나무전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연출되는 종합 무대이다.

시장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는 치열한 열정과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성취와 좌절이 포개지고, 탄식과 환희가 꼬이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시장 사람들뿐만 아니라 순창군민에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장날, 장 이튿날, 장 안날로 약속이 정해졌다. 학생 수업료(사친회비, 월사금)가 많이 걷히는 날이 장 이튿날이기도 했다. 멀리 사는 사돈도 장날 국밥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정겨운 풍경이 있던 순창시장이었다. 지친 삶을 이끌고 시장 사람들을 한 나절 만나고 나니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쇠전(우시장)

꼭두새벽 먼 길을 걸어온 황소의 거친 숨소리에 눈썹과 코뚜레 장식에 하얀 성에가 껴 있고, 45명의 남자들이 함께 쇠전에 들어온다. 화물차가 없던 시절 소들은 이른 새벽길을 34시간을 걸어서 쇠전(우시장)까지 온다.

줄다리기 흥정이 끝나고 현금을 받게 되면 목돈을 전대에 꾸려 허리춤에 수습한다. 주위의 즐비한 국밥집 등 식당들이 이들을 반긴다. 이 돈은 대학 등록금, 딸아이 혼수품비 등 여러 용도로 나눠지고 시장을 돌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순창 우시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7대 우시장이자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소문난 장이었다. 전라북도 언론에 소 관련 기사가 실릴 때면 순창 우시장 사진이 항상 사용되곤 했다.

 

처녀들만의 장, 베개딱지전

우체국(지금의 순창농협) 뒷골목에 열렸던 베개딱지 전(베개수전)은 전국 유일의 장으로 생각된다.

일자리가 귀하던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소녀들, 집안일이 끝나고 남는 시간은 베개수를 놓았다. 그녀들은 그렇게 성장하며 소녀시절을 보냈다.

여러 색실로 원앙, , 병아리와 문양 등을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솜씨는 가히 수공예 예술품이다. 베개딱지는 베개 양쪽에 쓰이니 한 쌍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손 떨리는 긴장의 연속, 그 시간을 이겨내고 비로소 한 쌍의 작품이 완성된다.

사과상자 두서너 개를 천으로 덮어씌운 위에 베개수를 놓고 고급, 중급 하급을 정해 가격이 정해진다. 고급수가 먼저 팔리고, 남은 것은 헐값에 거둬간다.

가슴 졸이며 쭉 둘러 서 있는 누나들의 댕기머리가 신기해 살짝 당겨보고 도망친 악동의 시절, 지금 그 누나들 잘 살고 계실까? 그 아름다운 광경의 사진 한 장 만들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최고급 수를 놓은 경지에 들어서면 그 동안 모은 돈이 시집갈 밑천이 되고. 그 맥이 이어지기 어려우니 아쉽다.

지금은 순창읍 남계리에 거주하는 제영옥(67) 님이 순창 자수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순창자수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라 하시니 꼭 그 꿈이 꼭 이뤄지시길 바란다.

 

나무전

베개딱지전 옆으로 나무전이 이어진다. 장작 짐은 지게에 네모반듯하며 높아 보이게 쌓는 솜씨가 기술이다. 저울에 달아 무게를 가늠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보와 고수의 차이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쭉 늘어선 나무 중 많아 보이는 짐 쌓기가 경쟁력이다.

제일 나중에 팔리는 나무는 값도 헐하다. 어느 나무꾼은 덤으로 한 손을 묶어 들고 오는데, 그 센스는 빨리 팔리는 묘수가 된다. 나무를 산 사람의 집에 따라가 집에 내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가리나무단(소나무잎)의 둥그런 묶음 기술이 신묘하다. 부잣집으로 대여섯 짐이 줄지어 따라간다. 한 나절 이상의 먼 거리를 오직 지게에 다리 힘으로 오고가는 그들의 종아리 근육에 경의를 표한다.

 

동성상회(그릇 가게)

1960년대 순창시장에서 가장 큰 그릇가게는 현재의 시장 내 버스정류장 부근에 있던 동성상회였다. 취급 품목은 사기 그릇·양은 그릇·스테인리스 그릇 등의 식기와 냄비·주전자·찻잔·주방용품에 요강·세숫대야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 일체를 팔았다.

동성상회는 옥과·갈담·동계 등지의 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떼어가는 도매시장 역할도 겸한 큰 규모의 그릇 가게였다.

 

신흥상회와 신발가게 장옥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고무신은 국민신발이었다. 지금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고무신세대였다. 남학생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여학생들은 코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어느 집에 가도 섬돌 위에 고무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발 수로 식구들 수를 알아맞혔고, 식구 중 누가 집에 있고 없고까지 알 수 있었다.

신흥상회는 고무신과 운동화(1960년대 중반 이후)를 취급하는 도매상이었다. 옥과·운봉·임실 등지 상인들이 이곳에 들러 신발을 떼어갔다. 시장 내 신발가게 장옥에는 10여 개 장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낡은 고무신이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 떨어졌다고 보채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긴 부모들은 이곳에 들러 새 고무신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삼베(마포)

1970년대까지도 구림면, 풍산면 등의 삼베가 순창포로 불리며 유명했다. 순창군에서 생산된 삼베가 거래되던 삼베(마포)전은 장옥(場屋·요즘의 상가와 같은 의미)은 없고 맨 땅에 거적 두서너 장을 펴고 시골 아낙들이 가슴에 안고 온 삼베를 들어 보이며 흥정이 이루어진다.

상급으로 높은 값을 받으면 칭찬과 더불어 다음 거래도 약속 받는다. “아지매, 베 잘 낳았네는 최고의 칭찬이다. 아이를 낳아 기른 만큼 정성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금방 동네에 소문이 나고 솜씨 좋은 아낙은 베틀에 앉아서도 흥이 나겠다. 여러 공정을 거쳐 오로지 손작업으로 고운 삼베 한 필을 낳은 노고를 생각하면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삼베는 씨 뿌려 키운 대마를 삶고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째서 실로 만들고 베틀에서 짠 직물이다. 정오가 되기 전에 파장이 되고 모아진 삼베는 큰 무더기를 이루고 묶음이 되어 각처로 실려 가고 삼베(마포)전은 텅 빈 공간이 된다. 각 고을 아낙들의 수고와 보람이 장바닥에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며 삼베전은 삼베 한 폭처럼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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